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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도 놀란 강난희 손편지…"2차가해 떠나 피해자에 큰 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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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인 강난희씨가 썼다는 손편지가 공개되면서 박 전 시장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라는 비판 속에서 당사자에 준하는 가족의 반론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2차 가해 여부를 떠나 편지 내용이 피해자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전 시장 사건 피해자의 변호를 맡은 김재련 변호사는 8일 중앙일보에 “박 시장 부인이 지지자들에게 쓴 사적 편지에 대해 피해자 측이 코멘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그 편지를 받은 지지자들이 소셜미디어(SNS)에 편지를 올리는 행위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으로 판단돼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인 강난희씨가 자필로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7일 박 전 시장의 지지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캡처]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인 강난희씨가 자필로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7일 박 전 시장의 지지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캡처]

피해자 측 “SNS에 편지 올리는 행위 유감”

이어 “검찰 수사 발표, 법원 판결 내용, 인권위 조사 결과 등 국가기관의 발표 내용조차 부정하는 듯한 지지자들의 태도는 피해자의 안전한 일상 회복과 우리 사회의 위력 성폭력 근절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미 정리된 사실관계에 추가로 확인하고픈 사실이 있다면 박 시장 핸드폰을 포렌식하면 될 듯하다”고 덧붙였다.

강씨가 박 전 시장 지지자들에게 쓴 것으로 보이는 손편지가 SNS 상에 공개된 것은 지난 6일이다. “박원순의 동지 여러분”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박 전 시장 지지단체인 ‘박원순을 기억하는 사람들(박기사)’의 입장문에 슬픔을 느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달 국가인권위원회가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이 인정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박기사 측은 “인권위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피해자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부인 강난희씨가 2019년 6월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부인 강난희씨가 2019년 6월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전문가 “편지 파급력 왜 생각 않았나”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인 강난희씨가 자필로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7일 박 전 시장의 지지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캡처]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인 강난희씨가 자필로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7일 박 전 시장의 지지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캡처]

편지는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나의 남편 박원순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저와 우리 가족은 박원순의 도덕성을 믿고 회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그를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하며 행동할 것이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민경국 전 서울시 인사기획비서관 등이 이 편지를 공유했다.

편지를 다룬 기사에는 “2차 가해 하지 마라” “휴대폰을 까라” “피해자 인생을 어디까지 짓밟을 것이냐” “정말 남편을 추모한다면 마음속으로 담으라” 등의 비난 댓글이 달렸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해당 편지에 관해 “또다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유가족 여성과 피해 여성, 즉 여성과 여성 간 개인적 대립으로 만드는 것도 문제”라며 “안희정 사건 때와 비슷한 2차 피해의 전형적 패턴”이라고 말했다.

윤김 교수는 특히 편지 속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 아니더라도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편지를 일종의 애도 방식으로 볼 수 있지만 한 명이 아닌 단체에 보냈다면 메시지가 공적인 메시지로 탈바꿈하는 파급력을 왜 생각하지 않았는지 아쉬움이 있다”며 “확산을 원하지 않았다면 유포한 측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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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 2차 가해 여부 판단 어렵다는 의견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비서 성폭력 사건 당시에도 2심 판결 뒤 안 전 지사 부인이 SNS에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2차 가해 논란이 일었다. 전문가들은 2차 가해 여부를 떠나 강씨의 편지가 피해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성폭력 사건을 여러 번 다룬 한 변호사 A씨는 “박 전 시장이 사망한 상황에서 가족이 반론이나 항변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생각하면 편지를 2차 가해로 분류할 수 있을지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시장이라는 신분과 지위, 사건이 진영 논리로 대립하는 상황을 볼 때 피해자에게 큰 위협과 상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편지 쓴 것을 2차 가해로 단정하기 어렵다 해도 의도성을 갖고 편지를 유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다시 공격의 대상이 되고 사건이 환기돼 피해자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해당 편지는 강난희 여사가 작성한 것이 맞으며 박 전 시장 가족 측이 전달해왔다”고 밝힌 박기사 관계자는 2차 가해 논란에 관해 “손편지를 본 일부 관계자가 주변에 공유하면서 온라인상에서 퍼져나간 것으로 본다”며 “정확한 노출 경로를 확인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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