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야기] 의학지식 헷갈릴 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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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의학전문지 BMJ는 최근 감기환자가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은 몸에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실었다. 지금까진 감기환자에게 물을 많이 마시도록 권유해 왔다. 그러나 BMJ는 호주 연구진의 주장을 인용해 감기의 경우 고열과 기침.콧물로 탈수가 되면 항이뇨 호르몬 분비가 늘어나 소변량이 줄어들고 이 때문에 체내 수분이 일정량 유지된다고 말했다.

이때 물을 많이 마시면 수분이 지나치게 많아져 혈액 중 전해질 농도가 떨어지고 이것은 피로와 신경과민 등 인체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독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도 감기환자에겐 물이 보약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자주 써왔기 때문이다.

둘째 사례를 보자. 주인공은 폐경 여성의 여성호르몬 보충요법이다. 지금까지 기자는 물론 의사들도 폐경 여성에게 여성호르몬제 알약을 투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여성호르몬제 복용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2002년 미국립보건원은 이러한 믿음에 찬물을 끼얹는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까지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심장병 예방효과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하면 심장병 발생률이 다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하던 여성은 물론 이를 처방했던 의사들도 크게 당황해야 했다.

셋째 사례는 비타민C다. 2000년 미국 슬론케터링 암센터 연구진은 암환자에게 다량의 비타민C는 암세포의 생존 능력을 높여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치료의 효과를 떨어뜨린다고 발표했다. 비타민C가 암환자에게 도움을 준다는 믿음을 깨뜨린 연구결과였다. 평소 비타민이 몸에 좋다는 기사를 많이 써온 기자에게도 문의가 빗발쳤다.

위의 사례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선 의학에서 불멸의 진리를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누구도 의심치 않는 진리라면 담배가 몸에 해롭고 운동이 몸에 좋다는 정도일 뿐이다. 학자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의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인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연구자의 입맛에 맞는 실험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의학에서 통용되는 모든 진리는 인구집단을 관찰해 얻은 통계수치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진리란 동시대 전문가들의 투표결과에 다름 아니란 우스갯소리도 통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에서 일반인들이 의학정보의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의학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 집단의 다수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견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완전하진 않지만 그래도 그것이 실패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한두 가지 반론이 나왔다고 바로 곧이곧대로 수용해선 곤란하다. 위의 사례로 다시 돌아가 보자.

첫째, 감기환자에게 무조건 많은 물을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 특히 열이 심하지 않은 환자에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여전히 고열과 기침이 심한 감기라면 항이뇨 호르몬의 작용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물을 보충해줘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주류 의견이다. 감기환자에게 물은 여전히 필요하되 예전처럼 환자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덮어놓고 물을 많이 주진 말자는 것이다.

둘째, 여성호르몬은 완전히 용도폐기됐을까. 그렇지 않다. 여성호르몬은 심장병 증가 등 새롭게 발견된 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폐경증후군이나 골다공증 치료에 가장 값싸면서도 효과적인 치료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예전처럼 폐경 여성이면 누구나 복용해야 하는 알약은 아니지만 의사와 상의한 뒤 득실을 비교해 득이 실보다 크다면 복용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란 것이다.

셋째, 비타민C도 마찬가지다. 암세포의 생존능력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상세포의 활력도 증진시키므로 전체적으론 여전히 이익이 된다. 비타민이 암 예방과 치료에 해롭다는 연구가 1이라면 이롭다는 연구는 9 정도로 월등하게 비타민을 지지하는 결과가 많다.

의학은 속성상 절대불변의 진리가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시대 보편적 진리를 존중할 가치는 충분하다. 곁가지에 불과한 한두 가지 반론에 현혹되어선 곤란하다. 자칫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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