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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원전 미스터리의 진실, 법정에 세울 용기가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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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대훈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1국장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격노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위원장의 “이적행위” 발언에 ‘법적 책임’을 거론했다. “구시대의 유물 정치” “마타도어(흑색선전)”를 묵과하지 않겠다고 한다. 청와대 주변에선 “북풍 공작” “망국적 색깔론”이라며 험악하게 거든다. 요 대목에서 왜 안 나오나 했다. 검찰·야당에다 언론을 묶어 적폐세력으로 몰아치기 말이다. 아니나다를까 이낙연 대표가 언론개혁을 꺼냈다. “악의적 보도와 가짜뉴스는 혼란과 불신을 확산시키는 반사회적 범죄”라고 그럴싸한 구실을 붙였다. 사사건건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이 못마땅하니 조신하라는 무서운 신호로 읽힌다.

북한 원전, 월성 1호기 커지는 의문 #정부, 색깔론·언론개혁 내세워 반격 #선동·가짜뉴스라면 법적 책임 묻길 #표현 자유 따지는 역사적 재판될 것

“(문 대통령은) 신문을 꼼꼼하게 읽고, 인터넷 댓글까지 읽는다.”(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그렇다면 원전 의혹에 대해 민심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으리라. 세상은 진보식 표현으로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하고, 북한식으론 “국민을 특등 머저리로 아는 모양”이라며 혀를 찬다.

왜 산업부 장관의 입에서 조폭영화에서 들을 법한 “너 죽을래” 막말이 튀어나왔나. 왜 공무원이 감사원의 컴퓨터 포렌식 하루 전 오밤중에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원전 파일을 허겁지겁 지웠나. 왜 무당 굿판도 아닌데 ‘삭제 범죄’를 “신내림”이라고 둘러댔나. 왜 검찰이 원전 공무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그날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배제를 시도했나. ‘북원추’(북한원전건설추진방안)가 담긴 파일명이 ‘pohjois’(뽀요이스, ‘북쪽’이란 핀란드어)라는데, 첩보작전이라도 폈나. 멀쩡한 원전도 없애지 못해 안달인 정부에서 왜 일개 공무원이 겁을 상실한 채 북한에 원전 건설을 검토했나. 온통 의문투성이다.

조국·추미애 사태를 통해 운동권 정권 사람들은 상식을 벗어난 일을 버젓이 저지른다는 학습효과를 국민 뇌리에 주입했다. 저토록 괴이한 행동을 할 때는 삭제된 원전 파일에 뭔가 어두운 사연이 감춰 있으리라고 그래서 의심한다. 정부는 우연이고 음모론이라고 일축한다. “개인 아이디어”이고 “선거용 색깔론”이니 현혹되지 말라고 윽박지른다. 이낙연이 던진 언론개혁은 정부 생각에 반하는 주장을 펴면 유언비어와 가짜뉴스로 처벌하겠다는 경고일지 모른다.

원전 비밀 파일과 표현 자유의 관점에서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 사건은 많은 걸 시사한다. 1971년 6월 13일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미국의 베트남 군사개입 확대 과정 30년’ 보도가 미국을 강타했다. NYT는 국방부 기밀문서(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해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의 정당성을 밀어붙이기 위해 조직적으로 선전과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베트남전 확전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이 조작되는 등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당시 리처드 닉슨 정부는 전쟁에 반대하는 히피들의 반정부 운동을 걱정했다. 곧바로 “기밀 유출로 국가안보가 위협받는다”며 NYT와 워싱턴포스트의 후속보도를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페이퍼를 유출한 내부 제보자를 색출해 방첩죄(防諜罪)로 기소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어느 정부도 국민을 기만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것이 헌법이 보장한 자유로운 언론의 책임이다”라는 역사적 판례를 남겼다. 어떤 권력도 국민을 속일 권리는 없다는 선언이었다. 제보자도 무죄였다. 이 사건은 베트남 전쟁을 ‘더러운 전쟁’으로 떨어뜨렸고, 닉슨 사임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악의 평범성’을 설파한 한나 아렌트는 ‘정치에서의 거짓말(Lying in Politics): 펜타곤 페이퍼 고찰’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베트남 전쟁은 ‘첫 패전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피하려고 현실을 호도한 대국민 기만극이었다고 분석했다. “정치에서 거짓말이 반복되면 그 거짓을 생산해낸 자들조차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자기기만에 빠진다”고 원인을 지적했다.

북한 원전 건설 추진과 7000억원을 날린 월성 1호기의 경제성 조작 의혹은 내 나라 안보와 내 세금이 걸린 중대한 문제다. 정상회담 성공과 김정은 답방을 성사시킨 정권이란 신기루를 좇아 절차적 정의를 무시했는지 따지고, 삭제된 530개 파일의 실체를 밝히는 건 국민 권리이자 언론 책무다. 청와대와 정부는 악의적으로 왜곡한 선동과 가짜뉴스가 있다고 진짜 믿는다면 법적 책임을 말에서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 허위사실 유포든 명예훼손이든 국가기밀 누설이든 걸어 법의 심판을 받아보자. ‘원전 파일 미스터리의 진실’은 펜타곤 페이퍼 사건처럼 통치권의 한계와 표현의 자유를 놓고 뜨겁게 논쟁하는 역사적 재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추신: 10부작 다큐 ‘베트남 전쟁(The Vietnam War)’과 영화 ‘더 포스트(The Post)’를 설 연휴에 보길 권한다. 다큐는 국가 권력의 거짓말과 더러운 전쟁의 전개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이런 부조리를 폭로하는 언론의 용기를 감동적으로 그린다. 아렌트의 ‘정치에서의 거짓말’을 이해하는 데도 유익하다. 더 포스트의 홍보 문구가 인상적이다. ‘세상을 속인 완벽한 거짓말, 세상을 바꾼 위대한 폭로’.

고대훈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