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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코로나바이러스와 경제 불평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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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난 1년간 인적·경제적 손실이 너무 컸다. 전 세계에서 1억 명 이상이 감염되고 사망자 수가 220만 명을 넘었다.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줄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 백신이 나오면서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전 세계의 백신 접종 횟수는 62개국에서 1억을 넘었고 이스라엘은 인구의 58%, 영국은 14%, 미국은 10%가 접종을 받았다(옥스퍼드대학 집계 자료, 1회 이상 접종 기준). 올 여름이면 많은 국가에서 집단 면역이 가능해지고 위기 전의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백신 접종과 경기 부양 정책에 힘입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5.5%로 지난해 -3.5% 성장률에서 V자형 반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백신 접종과 경제 회복 빨라져도 #불평등·양극화 해결은 쉽지 않아 #취약층 돕고 고용 늘리는 정책과 #공동체 살릴 시민 참여 필요해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기고 경제 침체를 벗어나도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세계적으로 심각했던 경제 불평등과 양극화가 이번 팬데믹으로 더욱 악화됐다. 모두 다 같이 힘든 것이 아니라 많은 고소득층은 오히려 이득을 봤다. 거대 기술기업은 늘어난 디지털 수요로 호황을 누렸다. 막대한 재정 지출과 저금리의 유동성에 힘입어 자산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자산 보유자의 소득이 늘었다.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Oxfam)은 ‘불평등 바이러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10대 부자의 재산이 코로나19 이후 5400억달러(약 600조원) 늘었다”고 밝혔다. 반면에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이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 감소로 빈곤으로 내몰렸다”고 지적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코로나19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났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다는 말은 허구”라고 하면서 “누구는 초호화 요트를 타고, 누구는 난파선의 파편을 붙잡고 바다에 떠 있다”고 했다. 경제가 회복돼도 불평등의 위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IMF 보고서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팬데믹 이후 상당 기간 소득 불평등이 심화됐다.

한국은 지난해 경제가 어려웠지만,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IT 품목과 의료품 수출이 늘어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충격이 적었다. 올해 백신 접종이 점차 이루어지면 일상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은행은 경제성장률이 작년 -1%에서 올해 3%로 반등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경제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집합금지, 영업제한으로 영세업자와 저소득층이 큰 피해를 보았다. 통계청의 지난해 3분기 가계동향조사(전국 2인 이상 비농림어가구 대상)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55만원, 사업소득은 28만원으로 전년동기대비 각각 10.7%, 8.1% 감소했다. 반면에 소득 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744만원으로 1년 전과 비슷하고 사업소득은 194만원으로 5.4% 늘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부의 분배도 매우 악화됐다. 경기회복이 ‘K자 양극화’ 양상을 보이면서 가계, 기업, 업종 사이에 격차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경제의 성장 회복과 불평등 해소를 함께 추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분배 개선은 시장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피해를 본 취약계층에 대한 직접적인 소득 보전과 더불어, 의료, 육아, 교육, 직업훈련 등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공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하여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자기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조세와 이전지출을 통한 재정의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면서도 근로와 투자 의욕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여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도모해야 한다.

또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디지털 전환이 빨라지고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추세에 대응해야 한다. 기술활용 능력에 따라 가계와 기업 간 격차가 점점 커질 것이다. 기존의 일자리가 소멸되고 ‘고용 없는 경기회복’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노동자의 기술숙련도를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을 과보호하면 성장과 분배 개선에 부작용이 클 수 있다. 열린 노동시장을 만들고, 불필요한 시장규제를 줄여 좋은 민간 일자리를 많이 늘려야 한다.

모든 문제를 정부가 해결할 수 없다.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보살피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 세계 최고 부자인 거대 기술기업의 창업주들은 자선사업에 상당한 부를 매년 기부한다. 한국도 대기업이 많은 사회 공헌 활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자수성가한 기업인들이 평생 모은 거액을 교육과 의료 사업에 기부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웠던 작년에 ‘사랑의 열매’가 모금한 기부금은 전년대비 23%가 늘어난 역대 최고 8462억원이었다. 우리 사회가 심한 내부 갈등과 정치 대립을 겪고 있지만 나보다 더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긍휼(compassion)의 마음이 넘쳤다. 힘든 시기이지만,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