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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출산 망설임에 마침표 찍은 다운증후군 아이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53)

국제결혼이란 걸 하고 일본에서 살 결심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걱정은 출산 문제였다. 만에 하나 최악의 상황에 놓였을 때 외국에서 혼자 키울 수 있을까였다. 내가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은 이혼, 사별 그리고 장애가 있는 아이를 출산했을 경우였다. 혼자서도 키울 수 있다고 각오가 서기까지 1년 정도가 걸렸다.

각오하게 된 계기는 미용실에서였다. 기다리는 동안 집어 든 잡지에 다운증후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잊었지만, 처음에는 절망을 느꼈었으나 지금은 행복하다는 내용이었다. 확신이 섰다.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키울 수 있겠어’라고. 잡지에 실린 글을 보고 각오를 굳혔다 하면 너무 경솔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기사는 1년에 가까운 나의 망설임에 마침표를 찍게 해 주었다. 현실을 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경험자의 말, 미디어의 효과는 크다.

한국에서 유명인이 다운증후군 가족을 소개했다. 영상을 보고 조금은 걱정을 덜어내고 희망을 품은 부모가 많았다고 한다. [사진 TV조선 '아내의 맛']

한국에서 유명인이 다운증후군 가족을 소개했다. 영상을 보고 조금은 걱정을 덜어내고 희망을 품은 부모가 많았다고 한다. [사진 TV조선 '아내의 맛']

우연히도 최근에 한국과 일본에서 다운증후군 가족 이야기가 소개되는 걸 보게 되었다. 일본 방송에서는 독설가로서도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다카시마 치사코(高嶋ちさ子)의 언니를 둘러싼 이야기, 한국 방송에서는 정치가 나경원의 딸 이야기이다.

우선 독설가로도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언니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1962년생으로 60세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의사로부터 20세까지 살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말을 들었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고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그 가족은 서로 말다툼할 정도로 스스럼없다. 언니의 독설도 만만치 않았다. 여동생 뺨치는 독설가였다.

언니는 아버지와 둘이서 살고 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문제는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면 누가 돌볼 것이냐다. 남동생은 집에 누나 방을 준비했다고 하고, 여동생은 오빠에게는 맡길 수 없다며 자기가 맡겠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언니는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단다. 아버지는 형제들이 같이 사는 건 힘들 거라며 시설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자신을 포함해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유튜브로 정치가 나경원 가족의 모습을 보았을 때 큰 놀라움은 없었다. 이미 일본 방송에서 일상생활을 즐기는 다운증후군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움보다 한국에서도 유명인이 다운증후군 가족을 소개했다는 반가움이 컸다. 영상을 보고 조금은 걱정을 덜어내고 희망을 품은 부모가 있었을 것이다. 사진이 아닌 영상으로 소개하는 것은 그 의미가 더 클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선천적·후천적으로 불편함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들이 살아가기 힘든 구조다. 지금처럼 편리한 세상에서 그들이 편히 살아갈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과학과 문명의 발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불편한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세상은 성숙한 사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100세 시대. 고령자도 따져보면 장애인에 속한다. 근력, 시력, 청력 등 모든 기능이 떨어진다. 지팡이와 휠체어 신세도 져야 한다. 신발 하나도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신을 수 없게 된다. 두 발로 뛰어다니는 사람만을 위한 사회는 결함투성이라 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 ‘배리어 프리’라는 것은 물리적인 개선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인식 개선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신체적·정신적 조건을 가졌든 나름대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 본인이 할 수 있는 일,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길 바란다.

유명인이 장애가 있는 가족과의 삶을 공개하는 것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pixabay]

유명인이 장애가 있는 가족과의 삶을 공개하는 것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pixabay]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보았을 때, 자꾸 눈이 간다. 그때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말이 떠오른다. 왜 자꾸 눈이 가는 것일까. 늘 고민이었다. 다운증후군 가족을 소개하는 방송을 본 후에 깨달았다. ‘눈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익숙해지는 일’이. 처음 서양인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갔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사진과 영상을 봤을 때 그 모습에 당황했다. 그러나 지금은 놀라지 않는다.

유명인이 장애가 있는 가족과의 삶을 공개하는 것은 엄청난 효과를 낸다. 눈에 익숙하게 해 준다. 가능성을 보게 해 준다. 공개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더군다나 같은 장애가 있는 아이를 가진 부모에게는 ‘희망’일 것이다.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설 개선보다 빨리 바꿀 수 있는 것 또한 우리의 인식이라는 점도 틀림이 없다. 마음먹기 나름이니까. 개인의 인식이 바뀌면 사회도 바뀔 것이다. 조금이라도 장애인이 평범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영상이 있어서 공유해 본다.

한일출판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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