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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전직 프랑스 요리사였던 전설의 파견 가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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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51)

벌써 스마트폰 통역 앱을 사용해 가이드 없이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언젠가는 회의 통역까지 사라지지 싶다. [사진 pxhere]

벌써 스마트폰 통역 앱을 사용해 가이드 없이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언젠가는 회의 통역까지 사라지지 싶다. [사진 pxhere]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면 사라질 직업이 많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내가 살짝 발을 걸쳤던 통역도 그중에 하나다. 벌써 스마트폰 통역 앱을 사용해 가이드 없이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언젠가는 회의 통역까지 사라지지 싶다.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번역도 그렇다. 최종 검토자인 편집자 정도는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좁은 시야로는 그 이상의 미래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나와 동시대에 살면서 우주여행을 예약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는 하루하루 생활을 유지할 일자리가 중요하다. 당장 현재만 해도 느닷없는 코로나19로 경제가 피폐해졌고 더 나빠질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내가 다니는 치과 의사까지도 미래가 불안하다고 한다. 경기가 나빠지면 치과에 가는 사람이 준다고 한다. 의사가 그럴진대 나와 같은 사람이야 말해 뭐하냐는 절망감까지 들려 한다. 4차 산업 혁명을 기다릴 것도 없이 당장 직업의 판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 하나의 직업만으로 살아낼 수 있는 시대가 아님은 역력하다. 어영부영 살아가기에는 우리의 수명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카멜레온처럼은 못하더라고 상황과 환경에 맞추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연한 생활력이 요구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실패했을 때, 지금의 직업을 떠나야 할 때, 꿈꾸던 직업을 얻지 못했을 때, 방향을 틀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한 우물만 파다가는 파는 것에 그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두, 세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평생 고용 시대가 무너지며 능력주의 세상이 되었다. 능력이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이 세상에는 능력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잘 나갈 능력이 없는 사람은 어찌해야 하나? 더 나아가서 잘 나가고픈 마음이 없는 사람은?

답은 직업에 귀천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 있다고 본다. 모든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 남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을, 내가 못 하는 일을 부탁하는 거라는 사고방식. 아무리 돈을 주고 고용했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어 고용한 것일 터이니 존중해 마땅하다.

일본에 ‘전설의 가정부 시마 씨’라는 사람이 있다. NHK ‘프로페셔널, 일에 임하는 자세(仕事の流儀)’에서 다룰 정도로 프로 도우미이다. 어떻게 평범한 주부가 저렇게 요리를 잘할 수 있나 혀를 내둘렀었는데 프랑스 요리 조리사였다 한다. 타산 시마(タサン志麻) 씨. 가사 대행업체에 파견인력으로 소속돼 있다. 이 대행업체는 요리, 청소, 정리 정돈 등으로 업무 내용을 세분화해 도우미를 파견한다. 시마 씨는 요리 전문이다.

시마 씨는 의뢰 시간 2시간 동안 의뢰인 집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들을 꺼낸다. 몇 분 동안 바라본 후 어떤 요리를 만들지 정하고 조리를 시작한다.[사진 pxhere]

시마 씨는 의뢰 시간 2시간 동안 의뢰인 집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들을 꺼낸다. 몇 분 동안 바라본 후 어떤 요리를 만들지 정하고 조리를 시작한다.[사진 pxhere]

시마 씨가 일하는 모습을 소개하는 방송을 보게 되었다. 의뢰 시간은 2시간. 의뢰인 집의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들을 꺼낸다. 몇 분 동안 바라본 후 어떤 요리를 만들지 정하고 조리를 시작한다. 일주일 정도 보존이 가능한 요리까지 만든다. 방송이니 옆에서 질문을 한다. 대답하는 사이에도 손은 빠르게 움직인다. 의뢰받은 시간 내에 최대의 성과를 내려 한다. 그 맛이 또 일품이라고 평판이 자자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니 요리책도 여러 권 출판했다. 방송 출연과 요리책 출판 영상 서비스 등으로 활동 범위가 넓어져서인지, 등록 업체를 통한 의뢰는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당연한 일이지 싶다. 맞벌이가 일반화한 세상이다. 집안일을 해 줄 인력이 필요하고 평가받는 세상이 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한국에서, 프랑스 요리 조리사였던 사람이 도우미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사회 분위기로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프랑스 요리 조리사는 인정받을지 몰라도 도우미는 존중받는 직업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에 귀천이 있을까? 없다고 본다. 범죄에 속하는 일 이외의 모든 노동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너무나도 ‘귀천’이 있어 보인다.

오사카 여행 때의 일이다. 쿠시야끼(재료를 꼬챙이에 꽂아서 튀긴 요리) 집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앞치마를 한 청년이 다가온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드실 생각이냐고 묻는다. 우리는 쿠시야끼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 청년은 자기의 가게가 쿠시야끼 집이라고. 코로나19 때문에 손님이 없어서 길거리에 나와 손님을 안내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알았다고 따라갔다. 텅텅 비어있을 줄 알았는데 카운터 좌석에는 손님이 있었다. 두 명의 직원이 반갑게 인사한다. 그 사장이라는 청년은 우리를 안내하고 다시 길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손님을 안내한 후 주방으로 들어갔다. 세 명의 청년은 민첩하게 움직이며 조리와 접객을 해 나갔다. 요리는 그저 평범했다. 그런데 자꾸 일하는 모습에 눈이 갔다. 작은 가게에서 민첩하게 일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들은 미래에도 쿠시야끼를 팔고 있을까? 당당한 그들의 모습이 좋았다. 직업에 귀천이 덜 한 사회에서 사는 그들이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일출판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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