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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영 “소설”이라더니···北원전 건설안, 산업부 파일에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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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2019년 12월 감사원 감사 직전 삭제한 530개 파일 목록이 28일 공개됐다. 이 가운데 2018년 작성된 북한 원전 건설 및 남북 에너지 협력 관련 문건 파일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지검 수사팀이 지난달 23일 문모 국장을 포함한 산업부 공무원 3명을 감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한 공소장에 첨부된 범죄일람표를 통해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

삭제 목록 530개 공소장에 나와 #탈원전 반대단체 동향보고도 지워 #윤건영, 정상회담 때 원전 논의 부인

530개 삭제 파일 목록에는 2018년 5월 2일자 ‘에너지 분야 남북경협 전문가_원자력.hwp’ 파일부터 같은 달 5월 14일과 15일 작성된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hwp’이란 파일명의 버전 1.1, 버전 1.2 문건이 포함돼 있다. 작성 날짜 미상의 ‘북한 전력산업 현황 및 독일 통합사례.pdf’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 과제.PDF’와 같은 연구보고서도 포함됐다.

목록에 나오는 북한 관련 삭제 파일은 모두 17개며, 이름이 같은 것을 제외하면 13개다. 복원 결과 이 파일들은 모두 ‘60 pohjois’라는 상위 폴더 밑에 있었다고 한다. pohjois는 핀란드어로 ‘북쪽’이라는 뜻이다. 네이버 핀란드어 사전을 보면 ‘Pohjois-Korea’가 북한이다. 또 pohjois 폴더 아래엔 ‘북원추’라는 하위 폴더도 있었다.

삭제된 북한 관련 폴더 ‘pohjois’ 핀란드어로 북쪽…보안 상당히 신경 쓴듯 

검찰 공소장에 첨부된 산업부 공무원들의 530개 파일 삭제 일람표. 빨간 네모 안은 북한 관련 파일.

검찰 공소장에 첨부된 산업부 공무원들의 530개 파일 삭제 일람표. 빨간 네모 안은 북한 관련 파일.

북원추는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방안이란 삭제 파일 제목의 줄임말로 추정할 수 있다.

이들 문건은 대체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제1차 남북 정상회담과 그 뒤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제1차 북·미 정상회담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4·27 판문점 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한반도 신경제 구상을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그해 4월 30일 직접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김 위원장에게 신경제 구상을 담은 책자와 PT(프레젠테이션) 영상을 건네줬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PT 영상을 USB 저장장치에 담아 김 위원장에게 직접 전했다고 한다.

당시 남북 정상은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함께 산책하며 담화를 나누는 가운데 “발전소 문제…”라고 말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를 놓고 비핵화 이후 북한의 전력에 대한 문제가 논의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중앙일보 2018년 4월 30일자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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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8년 당시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지난해 11월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남북 정상회담 어느 순간에도 원전의 '원'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북한 관련 문건에 대해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탈원전을 선언한 상황에서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직후에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했다는 것은 정치적·외교적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산업부 핵심 관계자는 “당시 북한 원전 건설 관련 지시나 보고가 있었다고 들은 바 없다”며 “당시 산업부 담당 공무원들이 해당 문서를 작성했는지 여부 등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당시 새 남북관계가 열리는 상황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여러 계획을 준비할 수는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일부 관계자도 29일 "4·27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우리가 북측에 전달한 한반도 신경제구상에는 원전 관련 내용은 전혀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철재·김기환·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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