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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 발언' 묻자 발끈···기자 폰 빼앗은 기자 출신 조수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구경 오셨어요?” “(보좌진에게) 이거 지워.”
지난 27일 서울서부지법 4층 복도에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선거에서 재산을 축소 신고했다는 의혹에 대한 선고 공판이 끝난 뒤였다. 그는 자신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방송사 수습 기자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그 기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디 소속이시죠? 어디세요?”라고 물었다. “법정에서 뭐하시는 겁니까. 구경 오셨어요?”라며 혼내는 투로 말하기도 했다.

[취재일기]

법정이라는 이유로 취재를 막는 그에게 다른 기자는 “법정이 아니라 (법원) 복도다. 일반인이 아니라 의원님인데 영상을 지울 필요가 있냐”고 항의했다. 이에 조 의원은 “지우셔야 한다”고 답했다.

‘후궁 발언’ 질문에 화낸 뒤 스마트폰 빼앗아

조 의원의 언동에 기자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약 20년간 신문기자로 일하며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취재력을 인정받아 제1야당의 비례대표 5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그 아닌가. 취재 현장 최일선에서 ‘숙명처럼’ 질문을 던지는 막내급 기자의 애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언론계 선배 출신의 발언이라 믿고 싶지 않았다.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재산을 축소 신고한 혐의로 벌금 80만원형을 받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재산을 축소 신고한 혐의로 벌금 80만원형을 받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이날 조 의원은 자신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재판부에 아쉬움을 나타낸 뒤 한 기자가 "고민정 후보를 후궁에 비유한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예민하게 반응했다. 조 의원은 “그 부분은 페이스북에 다 썼다. 내가 무슨 문제가 있냐”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기자와 말다툼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수습 기자를 발견하고는 스마트폰을 빼앗아 보좌진에게 넘기고 내용을 지우라고 한 것이다. 보좌진은 기자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준 뒤 영상을 삭제하는 것을 확인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오른쪽)과 박상혁 의원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고민정 의원을 후궁에 빗댄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중앙포토]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오른쪽)과 박상혁 의원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고민정 의원을 후궁에 빗댄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중앙포토]

언론 본령 ‘권력 견제’라 해놓고

조 의원이 떠난 뒤 현장에 남은 약 20명의 기자는 하나같이 씁쓸한 표정이었다. 일부는 스마트폰을 빼앗는 행동에 대해 “너무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의 영상을 삭제할 정도로 단호했던 조 의원의 주장에도 오류가 확인됐다. 서울서부지법 관계자는 “법정 내부에서는 촬영·녹음이 불가하지만, 복도에서는 별도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언론의 본령이 '산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이며 국회의원과 기자의 공통점도 그것”이라던 조 의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수습 기자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난 그는 이날 밤 사과성 입장문을 냈다. “명색이 기자 출신인데 현장 취재 기자들에게 너무 큰 실례를 범했다”면서다. 그러면서 “(선거법) 판결 요지에 충격을 크게 받았다”며 “저로 인해 고생하는 기자들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고 했다. 부디 그 사과엔 진정성이 있길 바란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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