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 오셨어요?” “(보좌진에게) 이거 지워.”
지난 27일 서울서부지법 4층 복도에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선거에서 재산을 축소 신고했다는 의혹에 대한 선고 공판이 끝난 뒤였다. 그는 자신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방송사 수습 기자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그 기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디 소속이시죠? 어디세요?”라고 물었다. “법정에서 뭐하시는 겁니까. 구경 오셨어요?”라며 혼내는 투로 말하기도 했다.
[취재일기]
법정이라는 이유로 취재를 막는 그에게 다른 기자는 “법정이 아니라 (법원) 복도다. 일반인이 아니라 의원님인데 영상을 지울 필요가 있냐”고 항의했다. 이에 조 의원은 “지우셔야 한다”고 답했다.
‘후궁 발언’ 질문에 화낸 뒤 스마트폰 빼앗아
조 의원의 언동에 기자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약 20년간 신문기자로 일하며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취재력을 인정받아 제1야당의 비례대표 5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그 아닌가. 취재 현장 최일선에서 ‘숙명처럼’ 질문을 던지는 막내급 기자의 애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언론계 선배 출신의 발언이라 믿고 싶지 않았다.
이날 조 의원은 자신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재판부에 아쉬움을 나타낸 뒤 한 기자가 "고민정 후보를 후궁에 비유한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예민하게 반응했다. 조 의원은 “그 부분은 페이스북에 다 썼다. 내가 무슨 문제가 있냐”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기자와 말다툼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수습 기자를 발견하고는 스마트폰을 빼앗아 보좌진에게 넘기고 내용을 지우라고 한 것이다. 보좌진은 기자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준 뒤 영상을 삭제하는 것을 확인했다.
언론 본령 ‘권력 견제’라 해놓고
조 의원이 떠난 뒤 현장에 남은 약 20명의 기자는 하나같이 씁쓸한 표정이었다. 일부는 스마트폰을 빼앗는 행동에 대해 “너무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의 영상을 삭제할 정도로 단호했던 조 의원의 주장에도 오류가 확인됐다. 서울서부지법 관계자는 “법정 내부에서는 촬영·녹음이 불가하지만, 복도에서는 별도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언론의 본령이 '산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이며 국회의원과 기자의 공통점도 그것”이라던 조 의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수습 기자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난 그는 이날 밤 사과성 입장문을 냈다. “명색이 기자 출신인데 현장 취재 기자들에게 너무 큰 실례를 범했다”면서다. 그러면서 “(선거법) 판결 요지에 충격을 크게 받았다”며 “저로 인해 고생하는 기자들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고 했다. 부디 그 사과엔 진정성이 있길 바란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