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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기 엑소더스가 코로나 극복 전시회로…우한 한국인의 1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5일 중국 우한의 컨벤션센터에 마련된 코로나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지난해 코로나 환자 치료 당시를 보여주는 전시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15일 중국 우한의 컨벤션센터에 마련된 코로나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지난해 코로나 환자 치료 당시를 보여주는 전시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한 폐렴'. 지난해 이맘때까지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임시로 지칭했던 말이다. 2019년 말 드러난 새로운 질병은 유구한 역사의 도시를 순식간에 휩쓸었다.

[영상]'코로나 봉쇄' 1년, 180도 바뀐 풍경 #트라우마 이겨낸 교민 박승철씨가 본 우한

2020년 1월 23일, 중국 정부는 인구 1400만 우한(武漢)을 통째로 봉쇄하게 된다. '유령도시'로 변한 우한은 이후 거대한 팬더믹(대유행)의 시작점이 됐다. 그리고는 전 세계로부터 '바이러스의 원흉'으로 낙인 찍혔다.

한국 교민들은 떠밀리듯 '엑소더스'에 나섰다. 우한 봉쇄 후 3차에 걸친 임시 전세기 운항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이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까지 잡은 박승철(30)씨도 두 번째 비행편에 몸을 실었다. 당시 그는 "여길 다시 못 돌아오겠지"라며 심란했다고 한다. 본가가 있는 대구와 비슷한 느낌을 줬던 '제2의 고향'은 그렇게 멀어져갔다.

정확히 1년 뒤,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금단의 땅'으로 불렸던 우한의 확진자 통계는 0을 가리킨다. '노마스크' 청년들로 가득 찬 클럽 내부를 찍은 사진이 외신에 포착됐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신년 맞이 행사에 모인 시민들은 형형색색 풍선을 날려 보내며 희망을 공유했다.
# 우한의 과거와 현재 모습,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

임시 병원 역할을 했던 거대한 컨벤션 센터는 코로나 극복을 보여주는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일선 의료진들이 입었던 방호복, 치료 상황을 다룬 사진과 메모가 전시되고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코너가 마련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우한 방문을 촬영한 영상도 상영된다.

관람객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박씨는 "중국 정부에선 우한을 '영웅의 도시'라고 부르면서 방역 성공을 강조한다. 시민들 분위기도 우리가 이겨냈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말 시작된 3차 대유행의 여파가 이어진다. 선별진료소 앞에 늘어선 줄이 사라지지 않는다. 해마다 열리던 보신각 '제야의 종' 행사는 67년 만에 처음 취소됐다. 구름 인파로 붐비던 명동 거리는 고요해졌다. 바다 건너 일본도 매일 확진자가 수천 명씩 쏟아진다. 박씨는 "중국인들과 이야기해보면 한국·일본이 더 위험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21일 우한 시내의 한 나이트 클럽 내부. 젊은이들이 '마스크 프리' 상태로 즐기고 있다. AFP=연합뉴스

21일 우한 시내의 한 나이트 클럽 내부. 젊은이들이 '마스크 프리' 상태로 즐기고 있다. AFP=연합뉴스

박승철 씨는 지난해 5월 1일 전세기를 타고 우한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현지 전자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우한의 상황이 안정세로 돌아서자 박씨처럼 복귀한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40일 넘는 격리 부담에 복학을 포기한 유학생, 초청장을 못 받아 돌아오지 못한 교민도 상당수다. 그는 이들에게 '현재 우한은 이렇다' 알려주려 시내 곳곳 찍은 영상을 꾸준히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있다.

8년째 우한에 머무르는 박씨가 직접 겪은 우한과 코로나가 궁금했다. 중앙일보는 21~22일 SNS 채팅과 화상 전화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코로나19 유행 시작될 당시엔 매우 두려웠겠다.
처음엔 진짜 겁이 많이 났다. 주변에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 못 돌아갈 수도 있고, 만약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우한에) 돌아올 수 있는 건가 마음이 심란했다. 감염될까 봐 겁도 많이 났는데 지나고 보면 추억이 된 거 같기도 하다.
코로나 유행 전후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
지난해 5월 당시에도 유동인구는 어느 정도 회복됐다. 거리에는 간혹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였지만, 쇼핑몰 등에선 QR 코드와 마스크 착용을 요구했다. 요즘 주말에 거리 돌아다녀 보면 코로나 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 한 90% 이상은 회복되지 않았나 싶다. 다만 마스크 안 쓴 사람들이 많이 늘긴 한 거 같다.
확진자는 더 나오지 않나.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최근엔 외부서 온 사람이 우한을 돌아다녀서 해당 동네 주민들을 전수 검사했는데 모두 문제없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들 마음의 상처는 여전할 거 같은데. 
주변 대학 친구 등에게 물어보니 특히 같이 살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지난해 1월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전광판에 뜬 우한행 항공편 안내. 뉴스1

지난해 1월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전광판에 뜬 우한행 항공편 안내. 뉴스1

본인도 마음의 상처를 얻었다고 들었다.
우한에 있을 때 여기서 코로나 터지고, 대구에 갔을 때도 확진자가 많이 나왔다. '내가 이동하는 데마다 환자 발생 많이 하네'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 그 상황 때문에 스스로 자존감도 낮아지고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트라우마로 남았다. 지금은 트라우마에서 회복했다.
우한에 살다 보니 안타까운 점도 있겠다.
우한 하면 '(코로나) 환자가 많은 곳, 최초 발생지'로 여겨지다 보니 부정적인 이야기만 많이 나온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코로나 터지기 전엔 유명 TV 프로에 소개되고 한국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안타깝다.

박승철 씨에게 마지막으로 지난 1년은 어떤 시간이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생각이 많아졌는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난 1년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1년이었고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 심정을... 지나고 나서 보면 정말 순식간에 1년이 지나간 거 같아요. "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영상=이진영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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