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8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생중계를 10분 가량 시청하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첫 질문을 받은 문 대통령이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입을 떼자 이 대표는 미동도 없이 TV화면을 주시했다. 잠시 뒤 문 대통령이 “사면을 둘러싸고 또다시 극심한 국론의 분열이 있다면, 그것은 통합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통합을 해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하는 대목에서 이 대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기자들에게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는 말을 남기고 광주행 KTX로 향했다. 이날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이 대표 주변에는 지역 시민단체 인사들이 ‘이낙연은 이명박근혜 사면 완전 철회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모여들었다.
“사면 건의” 없던 일로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아침에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며 “대통령 말씀으로 그 문제는 매듭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년 벽두에 꺼내든 사면 건의 계획이 2주 반만에 사실상 무산됐음을 인정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비록 사면이 대통령의 권한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해서 정치인들에게 그렇게(선고 직후 사면을)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밝혔다.
사면론 논란은 이렇게 종결됐지만 이 대표가 입은 정치적 상처는 크다. 호남 재선 의원은 “이 대표가 처음 사면론을 꺼냈을 때부터 속으로 반대했다. 적절치 않았는데 대통령 말씀으로 그게 더 명백해졌다”고 말했다. 강성 친문 쪽에서는 “이제 이낙연은 어렵다고 본다.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섣부른 사면론을 주장해 더 어렵게 됐다”(수도권 재선)는 관측까지 나왔다.
이 대표가 어떤 경위로 사면론을 꺼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불거졌다. 친문으로 분류되는 또다른 의원은 통화에서 “오늘 문 대통령 발언을 들어보니 사면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청와대 쪽에서도 전혀 이 대표와 상의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데 왜 이 대표가 나섰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앞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제안이었다는 보도에 이 대표는 “만남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사면 관련 대화는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여파 수습…이익공유제 등 집중
한 전략통 의원은 “사면 당사자인 두 전직 대통령이 조금만 다른 태도를 보였어도 대통령이 오늘 저렇게까지 얘기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이 대표는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내에 하던 일을 잘 마무리하는 수순으로 가야 한다”고 분석했다.
일단 이 대표는 사태 수습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날 그의 광주 방문은 서구 양동시장 방문,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주교 예방 등 민심 달래기 행보로 채워졌다. 문 대통령 기자회견에 맞춘 이벤트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지만, 이 대표는 “전부터 (광주 방문) 검토를 했었고 많이 늦었다”고 일축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날 공식 브리핑에서 “앞서 연초에 당 지도부는 당사자의 진정한 반성과 국민 공감대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모은 바 있다”며 “대통령 말씀이 당 지도부의 입장과도 일치한다”고 상황을 정리했다. 당대표실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이 “사면을 통해서 국민통합을 이루자라는 의견은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 “언젠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아마도 더 깊은 고민을 해야 될 때가 올 것”이라고 언급한 점을 들어 “이 대표의 입장을 가급적 배려했다”(핵심 관계자)는 말도 나왔다.
당 지도부는 이 대표가 지난 13일 제시했던 이익공유제에 대한 문 대통령 반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기류다. 문 대통령은 이익공유제에 대해 “코로나 시대에 오히려 돈을 더 버는 기업들이 피해 본 대상을 돕는 자발적인 운동이 일어나고 정부가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강조한 대통령 메시지를 어떻게 구현할지가 성패의 관건이다. 최 대변인은 “2월 임시국회에 법안의 성과가 나와야 하고, 이에 대한 전국민적 공유가 신속히 되도록 여러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고 전했다.
심새롬·김효성·남수현 기자 saero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