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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 안됐고 박원순은 됐다...제3후보 성공 법칙, 안철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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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이 채 안 남은 4·7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 ‘제3지대 바람’이 거세다. 지난해 말, 전격적으로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거대 여당(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국민의힘)이 국회 의석을 양분하는 구조에서 제3지대 인물이 서울시장 유력 후보로 부각되는 건 드문 일이다.

민선체제가 출범한 1995년부터 8번의 서울시장 선거에서 제3지대 인물이 바람을 일으킨 선례는 두 번 있었다. 1995년 무소속 박찬종 후보와 2011년 무소속 박원순 후보다.

막판에 꺼진 돌풍…기호 7번 ‘무균질’ 박찬종  

박찬종 후보가 1992년 대선에서 남대문시장에서 지나는 시민들 앞에서 유세하는 장면. 박 후보는 이후 1995년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중앙포토

박찬종 후보가 1992년 대선에서 남대문시장에서 지나는 시민들 앞에서 유세하는 장면. 박 후보는 이후 1995년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중앙포토

“서울시장 선거 D-42일, 박찬종 후보는 여전히 인기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20대와 대학생 사이에서 그의 지지는 대단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1995년 5월 17일자 중앙일보 기사)

당시 기사의 한 대목처럼 1995년 서울에는 ‘박찬종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해 5월 1일, 선거를 한 달 앞둔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자의 지지율은 37.4%로 24.2%를 기록한 제1야당(민주당) 조순 후보나 18.1%에 그친 여당(민자당)의 정원식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유명세에 힘입어 박 후보는 남양유업의 우유 광고 모델로도 나섰는데, 광고 문구인 ‘무균질 우유’에 빗댄 ‘무균질 정치인’은 곧 자신의 정치 슬로건이 됐다.

1995년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박찬종 후보는 당시 우유 광고에 출연하는 등 인기를 누렸다. 박 후보는 당시 광고 슬로건인 '무균질 우유'에 빗대 '무균질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웠다. 중앙포토

1995년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박찬종 후보는 당시 우유 광고에 출연하는 등 인기를 누렸다. 박 후보는 당시 광고 슬로건인 '무균질 우유'에 빗대 '무균질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웠다. 중앙포토

하지만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박 후보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민주당이 선거 막판에 영입한 경제부총리 출신의 조순 후보가 ‘경제 시장’ 이미지를 내세워 약진했다.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를 떠나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막후에서 조 후보를 지원한 영향도 컸다.

결국 3파전으로 치러진 선거의 최종 승자는 조순 후보(205만표, 42.3%)였다. 박 후보는 162만표(33.5%) 득표에 그쳤다.

초대 민선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민자당의 정원식(왼쪽), 민주당의 조순(가운데), 무소속 박찬종(오른쪽) 후보가 당시 토론 방송 출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초대 민선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민자당의 정원식(왼쪽), 민주당의 조순(가운데), 무소속 박찬종(오른쪽) 후보가 당시 토론 방송 출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패배가 확정된 뒤 박 후보는 “이번 선거는 나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싸움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안철수 등에 업은 기호 10번 박원순

조순 시장 이후 고건(민주당)→이명박(한나라당)→오세훈(한나라당) 등 양당 후보가 이겼던 서울시장 선거는 2011년 보궐선거 때 다시 제3지대 바람이 불었다. 당시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청년 멘토 이미지로 '안철수 현상'이란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며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그해 9월 5일 중앙일보-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39.5%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안 교수는 그러나 하루 뒤, 돌연 박원순 무소속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불출마 뜻을 밝혔다. 한 자릿수 지지율을 맴돌던 박 후보는 단숨에 야권 1위 후보로 급부상했다.

2011년 9월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입장을 밝힌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오른쪽)가 박원순 후보와 포옹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1년 9월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입장을 밝힌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오른쪽)가 박원순 후보와 포옹하고 있다. 중앙포토

기세를 올린 박 후보는 단일화 경선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야권 단일 후보가 됐다. 안철수 바람에다 단일화 바람까지 탄 '기호 10번' 박 후보는 10·26 보궐선거에서 215만표(53.4%)를 얻어 186만표에 그친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46.2%)를 꺾고 무소속 서울시장이 됐다.

2021년, 기호 2번이냐 기호 4번이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열린 아동학대 예방책 마련을 위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열린 아동학대 예방책 마련을 위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 전 시장의 승리 이후 10년 만에 부는 제3지대 바람에 야권의 심사는 복잡하다. 부동산값 폭등과 코로나 19 재확산 등으로 '반(反) 문재인 정서'가 커졌고 선거판이 야권에 유리해진 상황에서 안 대표에게 야권 단일 후보 타이틀을 넘겨 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안 대표에게 노골적일 정도로 부정적인 데다 나경원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이른바 국민의힘 ‘빅2’가 출마 의지를 내비치면서 함수가 복잡해졌다.

이는 곧, 야권 후보가 기호 2번(국민의힘)과 기호 4번(국민의당) 중 어떤 기호를 달지 모른다는 얘기다. 2번과 4번 후보가 동시에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3자 대결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야권의 최종 후보가 누가 되든 단일화 없이는 승리도 없다”(국민의힘 3선 의원)는 정서도 강하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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