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현문우답]'주역 대가' 김석진 옹 "올 하반기 일터 돌아가나 곤궁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1.01.12 05:00

업데이트 2021.01.1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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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1

‘당대 주역의 대가’로 꼽히는 대산(大山) 김석진 옹을 6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자택에서 만났습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와 경제 위축, 소모적인 정치적 공방으로 다들 힘겨워했습니다. 올해는 어떨까요. 김 옹은 “『주역(周易)』은 점치는 책이 아니다. 지혜를 얻는 책이고, 우리로 하여금 삶의 균형과 삶의 방법을 찾게 하는 책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공자 역시 죽간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주역』을 통독했습니다. 책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그만큼 공자가 『주역』을 아끼고 연구했다는 뜻입니다. 주역은 “미래는 이미 정해졌다”는 운명론적 결정론을 말하지 않습니다. 주역의 ‘역(易)’자는 바꿀 역자입니다. 매순간 변화하며 돌아가는 세상에서 건강한 균형을 찾기 위한 값진 조언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동아시아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지혜가 녹아 있습니다.

#풍경2

김석진 옹은 올해 94세입니다. 풍납동 자택 앞에 풍납토성이 있어서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 30분씩 빠짐없이 산책을 합니다. 걸을 때도 주역에 맞게끔 구호를 붙입니다. “하나, 둘, 셋, 넷”하는 게 아니라 왼발부터 “천(天一)일, 지이(地二), 천삼, 지사…”하는 식입니다.

“혼자서 풍납토성을 돌려면 90 넘은 늙은이가 겁이 나지 않겠나. 낙상할 수도 있고. 그런데 ‘천일, 지이, 천삼, 지사…’하고 외면서 발을 떼면 거뜬거뜬 걸어진다. 아무 잡념도 나지 않는다. 넘어지면 어떡하나 생각도 없어진다. 주역에선 그걸 ‘신(神)이 행한다’라고 표현한다.” 김 옹은 홀숫날은 몽촌토성을 왼쪽으로 돌고, 짝숫날은 오른쪽으로 돕니다. 그렇게 자신의 생활을 주역의 질서에 맞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풍경3

인터뷰 직전에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지난해 초에 그가 말한 ‘2020년’은 어땠을까. 그때는 막연한 미래였지만, 이제는 가까운 과거가 됐으니까요. 2020년 정초에 김석진 옹이 풀어낸 주역적 전망을 찾아봤습니다. 요지는 이랬습니다.

“2020년은 ‘산천대축(山天大畜)’에서 ‘산화비(山火賁)’로 변하는 괘다. ‘대축’은 크게 쌓는다는 뜻이다. ‘산천’은 조그마한 산이 하늘을 품듯이 욕심이 가득한 걸 말한다. ‘우리라야 된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며 계속 쌓아간다. 그럼 문제가 된다. 그걸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멈출 줄 아는 것이다. 만약 멈출 줄 모른다면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가 되고 만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난해의 주역적 전망에 고개가 끄덕여지시나요. 지금 돌아보니 ‘적확한 진단’이었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적잖이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풍경4

김석진 옹은 건강해 보였습니다. 1년 만에 뵙는데, 지난해보다 더 정정했습니다. 그에게 ‘2021년 신축년’을 물었습니다.

올해의 괘는 무엇인가.
“올 한 해의 괘는 ‘지택림(地澤臨)’이다. 땅 지(地)자에 못 택(澤)자다. 땅이 뭔가. 내가 걷는 바탕이다. 땅에서 모든 게 나와야 한다. 곡식도 땅에서 나오지 않나. 또 못에는 물이 가득 차야 한다. 이게 사는 거다. 지난해의 산천대축괘는 형이상학이고, 올해의 지택림괘는 형이하학이다. 지택림은 물질적인 것, 경제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땅에서 곡식이 나고, 못에 물이 가득 차려면 필요한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이 뭔가.  
“지난해에는 멈출 줄 알아야 하는데 제대로 멈추질 못했다. 코로나도 제대로 멈추지 못했고, 정치도 제대로 멈추질 못했다. 정치가 계속 고집을 부렸다. 서로 멈추질 못했다. ‘우리라야 한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자신은 안 멈추면서 상대방에게만 멈추라고 했다. 올해 지택림괘에서 필요한 조건은 ‘임(臨)’자다. 임하는데 지극 정성으로 임해야 한다. 그리고 ‘임(臨)’에는 ‘군림하다’는 뜻도 있다.”
‘임(臨)’자가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나.  
“올해 상반기에는 코로나 상황에 온 국민이 지극 정성으로 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코로나 위에 군림하게 된다. 상반기에는 코로나를 소멸시키고, 하반기에는 경제적으로 회복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상반기에 지극한 정성으로 임해야 한다. 잘하는 척, 임하는 척, 선심 쓰는 척해선 안 된다.”

#풍경5

주역의 괘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습니다. 체가 몸뚱이라면, 용은 팔다리에 해당합니다. 체가 찰흙 덩어리라면, 용은 그 찰흙을 이용해 만드는 온갖 형상이 됩니다. 체가 바탕이라면, 용은 변화에 해당합니다. 김석진 옹은 “올해의 체가 ‘지택림(地澤臨)’이라면, 올해의 용은 ‘뇌택귀매(雷澤歸妹)’  ”라고 했습니다.

 ‘뇌택귀매(雷澤歸妹)’  는 무슨 뜻인가.  
“‘뇌택귀매’는 누이동생이 시집가는 괘다. 집을 찾아간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의미다.   체(體)와 용(用)을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상반기의 ‘지택림’이란 체가 변해서 하반기의 ‘뇌택귀매’라는 용이 된다. 상반기에 지극 정성을 다해서 코로나를 소멸하면, 하반기에는 다들 자기 일터를 찾아가게 된다.”
아주 희망적으로 들린다. 
“그렇다고 아주 좋은 괘만은 아니다. 옛날에는 여성이 시집갈 때 광주리에 밤과 대추를 가득 담아서 갔다. 그런데 ‘뇌택귀매’에서는 누이가 시집을 가는데 광주리가 비어 있다. ‘승광무실(承筐無實)’. 열매가 없는 빈 광주리를 머리에 인다는 뜻이다.”
왜 광주리가 비어 있나.
“이건 살림하는 사람의 괘다. 살림이 어렵다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곤궁하다는 뜻이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때도 ‘뇌택귀매’괘가 나왔다. 코로나로 장기간 어려움을 겪었으니, 자기 일터로 돌아간다 해도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겠나.”

#풍경6

주역을 ‘점치는 책’으로만 본다면 빙산의 일각만 보는 셈입니다. ‘피흉취길(避凶取吉)’. 흉을 피하고 길한 쪽으로 가는 과정에서 주역은 부족한 점을 채우며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공자는 ‘십익(十翼)’이라는 주역에 대한 열 가지 해설서까지 내놓았습니다. 김 옹은 “공자가 아니었다면 주역이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김석진 옹은 2021년 신축년의 주역괘를 사자성어로 정리했습니다.

‘지림당위 대시이행(至臨當位 待時而行)’.  

무슨 뜻인가.
“자기가 해야 할 일과 자기가 임해야 할 자리에 합당하게 지극하게 임하고, 때를 기다려서 행한다는 뜻이다. 작년과 올해 코로나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렸다가 다시 실천하는 거다. 늦어졌지만 때를 기다려서 행하는 거다. 어쨌든 올 상반기에는 코로나에 대해 온 국민이 지극 정성으로 임해야 한다. 서로서로 보살펴야 한다. 그래야 극복할 수 있다.”

글=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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