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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본질적 문제" 김정은 퇴짜에, 머쓱해진 이인영 '백신지원'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일 8차 당대회 당시 평양 4·25 문화회관에 몰려든 당 대표자들. 김정은 위원장은 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한국 정부의 방역협력 제안 등을 '비본질적 문제'라고 평가절하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8차 당대회 당시 평양 4·25 문화회관에 몰려든 당 대표자들. 김정은 위원장은 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한국 정부의 방역협력 제안 등을 '비본질적 문제'라고 평가절하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계속 제안해온 대북 방역 협력, 백신 제공을 놓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당국 입장이 무색해졌다.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한 남북 방역 협력, 대북 백신 나눔의 전도사 역할은 그간 주무 부서인 통일부의 이인영 장관이 전면에서 했다. “부족할 때 함께 나누는 것이 진짜로 나누는 것”이라는 게 이 장관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지난달엔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을 코로나로부터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과도 직결돼 있다”는 말도 남겼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부족할 때 함께 나누는 것이 진짜로 나누는 것"이라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해 왔다. [연합뉴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부족할 때 함께 나누는 것이 진짜로 나누는 것"이라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해 왔다. [연합뉴스]

 하지만 북한 관영 매체들의 지난 9일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8차 노동당 대회에서 한국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방역 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꺼내 들고 북남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고성항 부두에 있는 해금강호텔을 비롯한 시설물들을 모두 들어낼 것"이라고도 재확인했다. 백신 나눔과 같은 방역 협력을 '비본질적 문제'로 규정한 것이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요구한 건 백신 협력이 아닌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에서는 의연히 조선반도정세를 격화시키는 군사적 적대행위와 반공화국모략소동이 계속되고 있다”며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늑장 대응 논란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백신 협력을 공론화하려 했다. 백신 확보 물량과 도입 시점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여론이 들끓는데도 백신 협력을 강조했다. 이 장관은 지난해 7월 27일부터 연말까지 약 5개월간 7차례에 걸쳐 민간단체를 통한 20억 4300만원 어치의 코로나 의료 물품 북한 반출을 승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방역 협력, 대북 인도적 지원을 ‘비본질적 문제’로 규정한 만큼 이를 통한 남북 관계 개선 시도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국내의 반대 의견을 무릅쓴 대북 코로나19 백신 지원에 대해 북한마저 호응하지 않으면서 정부와 이 장관의 구상이 무색해졌다.

그럼에도 당국은 코로나19와 관련되는 한 북한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쪽은 한국 정부라는 생각이 강하다. 또 북한이 조건부로 대화 의향을 내비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이번 발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북한에 백신을 주면서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한·미 연합훈련의 완전 중단을 먼저 약속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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