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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그렇게 어른이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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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채혜선 기자 중앙일보 기자
채혜선 사회2팀 기자

채혜선 사회2팀 기자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걸까. 아이에게는 쉽게 이해될 수 없는 문제다. 때는 대학생이던 2012년. 과외 학생이었던 일곱 살 지윤(가명)이는 어느 날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어른이 됐어요?”

스무 살이 넘었으니 당연히 어른인 건데 ‘어떻게’ 어른이 됐냐니. 살짝 당황했지만, 목에 힘을 주고 “눈을 감았다가 떴더니 저절로 어른이 돼 있었다”고 답했다. 지윤이는 그 과장 섞인 대답을 진짜로 믿었다.

일주일 후 지윤이를 돌봐주던 이모님은 “요새 지윤이가 잠을 안 자려고 한다”고 전했다. 자고 일어나면 어른이 돼 있을까 봐 무섭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다음 수업에서 “그 말은 장난이었다. 어른은 그렇게 쉬이 되지 않는다”고 지윤이에게 사과했다.

정인양 묘지에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정인양 묘지에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서른 두살인 내 나이를 곱씹으며 그때를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 어른이 됐을까. 어른이 맞긴 한 걸까. 이런 고민에 불을 지핀 건 입양 10개월 만에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때문이다. 응급실로 실려 온 16개월 정인이를 진찰했던 의사에 따르면 당시 정인이는 장이 터져 복부가 피로 가득 찼고, 갈비뼈 여러 곳이 부러진 상태였다.

정인이 사건이 최근 재조명되면서 맘 카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가 시작됐다. 10일 기준 10만여 건에 가까운 추모글이 SNS에 쏟아졌다. 법원에는 양부모의 엄벌을 촉구하는 진정서가 수백통씩 빗발쳤다고 한다.

잊을만하면 되풀이되는 아동학대 사건을 접하며 깨달았다. 수많은 ‘정인이’를 그냥 떠나 보낸 나에겐 아이에게 어른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었다.

전 세계 59관왕(지난해 7월 기준)을 기록한 영화 ‘벌새’에는 아이에게 어떤 어른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큰오빠에게 뺨을 맞은 뒤 귀통증을 느껴 병원에 간 주인공 은희(14).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은희에게 중년의 남성 의사는 “어쩌다 고막이 찢어지게 됐니”라고 묻는다. 은희가 답이 없자 의사는 “진단서 필요해?”라며 또 물었다. “왜요?”라는 은희에게 의사는 “증거가 되니까. 필요하면 얘기해. 알았지?”라고 했다.

폭력을 감지하고 진단서를 끊어주겠다는 영화 속 의사의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너를 힘껏 돕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나는 네 아픔의 원인을 알고, 그런 일을 또 겪지 않게 해주겠다는 약속이기도 했다. 어른으로서 너의 세계에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것이다.

그저 나이를 더 먹었다고 아이에게 어른 대접을 마냥 받을 순 없다. 미안하다는 말도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됐다. ‘어떻게’ 어른이 됐고, ‘어떤’ 어른인지를 아이들에게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너를 절대로 혼자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된다고.

채혜선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