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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변이하듯 퍼진다" 美의회 난입한 '큐어넌'의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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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지RG'는 '알차고 지혜롭게 담아낸 진짜 국제뉴스(Real Global news)'라는 의미를 담은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인증하는 합동회의를 방해하기 위해 미 연방의회에 난입했다. [AP=연합뉴스]

지난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인증하는 합동회의를 방해하기 위해 미 연방의회에 난입했다. [AP=연합뉴스]

오는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게 되면서 음모론 집단 ‘큐어넌(Qanon)’의 행로에 관심이 쏠린다. 큐어넌이 등장해 급속히 세를 불린 건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였고, 지난 6일 초유의 불법 의회 점거를 주도한 것 역시 큐어넌이란 지적이 나오면서다. 

알지RG #"트럼프는 구세주"이라는 '큐어넌' #트럼프 동조 속 SNS에서 급성장 #하원의원 당선 등 제도권 진입도 #미 본토 넘어 유럽 등으로 세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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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어넌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한 해인 2017년 말부터 극우 성향의 온라인 게시판 ‘포챈(4chan)’에서 ‘Q’라는 닉네임이 터뜨리기 시작한 음모론 혹은 이를 추종하는 집단이다. 큐어넌은 자신이 정부 고위 공직자라고 주장하는 Q와 익명(anonymous)을 합친 단어다. 아직 이 Q의 존재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은 아동 성매매를 일삼는 소아성애자들과 사탄 숭배자에 의해 지배되며, 여기에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속해있다. 그리고 이들은 비밀 관료 집단인 ‘딥 스테이트(deep state)’를 통해 사실상 국가를 통제하고 있고 이에 맞서 미국을 구원하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것이 큐어넌의 핵심 주장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의회에 불법 침입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연설대 가져가는 등 의회 난입 혐의로 체포된 애덤 존슨. [AFP=연합뉴스]

지난 6일(현지시간) 의회에 불법 침입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연설대 가져가는 등 의회 난입 혐의로 체포된 애덤 존슨. [AFP=연합뉴스]

이후에도 코로나19가 조작됐다는 설, 마스크나 코로나19 백신 무용론 등 여러 음모론을 낳았고, 11월 3일 대선 이후에는 ‘딥스테이트’ 등 민주당이 선거를 조작했다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신봉자, 하원의원 진출

미국에선 존 F.케네디 암살, 달 탐사 등과 관련해 과거부터 수많은 음모론이 존재해왔지만, 큐어넌만큼 대중화돼 널리 파급된 경우는 드물었다.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가 지난해 12월 21일부터 22일까지 미국 성인 11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오차범위±3.3%)에 따르면 응답자의 39%가 ‘딥스테이트’의 존재가 사실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또 소아성애자와 사탄 숭배자의 엘리트 집단이 미국의 정치와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17%가 사실이라고 답했고, 37%가 모른다고 답했다. 거짓이라고 답한 응답자(47%)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지난해 선거는 온라인에서 머물던 큐어넌이 제도권 정치로 들어오는 발판이 됐다. 미 공영 NPR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3일 선거에서는 큐어넌과 관련된 후보가 19명이나 있었다. 이 중 로런 베버트(35·공화당)와 마조리 테일리 그린(47·공화당)은 각각 콜로라도주와 조지아주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큐어넌 신봉자로 알려진 마조리 테일리 그린은 지난해 11월 3일 선거에서 조지아주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EPA=연합뉴스]

큐어넌 신봉자로 알려진 마조리 테일리 그린은 지난해 11월 3일 선거에서 조지아주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EPA=연합뉴스]

특히 ‘하이힐을 신은 트럼프’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그린은 큐어넌의 주장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게재해온 열혈 큐어넌 신봉자다. 미 언론들이 그린의 당선을 두고 “큐어넌이 의회에 입성했다”고 보도한 건 그 때문이다.

◇트럼프의 방관 혹은 동조

많은 음모론 중 유독 큐어넌이 이처럼 대중적으로 성장한 데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관 혹은 동조가 있었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큐어넌의 주장들을 리트윗하는 식으로 지지기반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큐어넌의 상징인 큐를 들고 지난해 11월 2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폭스뉴스 지지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큐어넌의 상징인 큐를 들고 지난해 11월 2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폭스뉴스 지지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가 2017년 1월 20일부터 2019년 10월 15일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그는 최소 145개의 음모론을 추종하는 계정을 리트윗했다. NYT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음모론(큐어넌)이 소셜미디어 변두리에서 보수 정치계로 옮겨갔고,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적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뿌리내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트위터보다 큐어넌이 잘 홍보되는 곳은 없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큐어넌이 전파되는 걸 도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트위터에 ‘딥스테이트가 자신의 재선을 막기 위해 미 식품의약국(FDA)을 이용해 제약사들의 백신 개발을 막고 있다’는 취지의 게시물을 올렸다. 또 지난해 10월 대선 1차 TV토론에선 큐어넌에 관한 질문에 “그들이 소아성애를 반대하며 열심히 싸운다”거나 “왜 (급진 좌파단체) 안티파에 대해선 묻지 않느냐”며 답변을 피하기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자신의 트위터에 ″미 식품의약국(FDA) 내 딥스테이트 혹은 어느 집단이 미 제약사가 백신과 치료제 임상 시험을 위해 참가자를 모집하는 걸 방해하고 있다″고 올렸다. [트위터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자신의 트위터에 ″미 식품의약국(FDA) 내 딥스테이트 혹은 어느 집단이 미 제약사가 백신과 치료제 임상 시험을 위해 참가자를 모집하는 걸 방해하고 있다″고 올렸다. [트위터 캡처]

또 대선 패배 이후에는 끊임없이 대선 불복과 부정 선거 주장을 이어가며 큐어넌을 결집시키고, 그들의 주장을 담은 게시물을 공유했다. 결국 동조와 방관은 지난 6일 미 초유의 ‘의회 불법 점거’까지 이어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6일 사망한 시위대 4명 중 2명이 열혈 음모론자였다. 또 경찰은 의사당 난입시위를 주도한 용의자 수십명을 체포했는데, 이 중 제이컵 앤서니 챈슬리는 자신을 '큐어넌 샤먼(Shaman, 주술가)'이라 칭하며 각종 집회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던 인물이다.

큐어넌 신봉자로 알려진 제이컵 앤서니 챈슬리는 지난 6일(현지시간) 미 의회에 난입했다. 그는 불법 침입과 의회 내 난폭 행위로 기소됐다. [AFP=연합뉴스]

큐어넌 신봉자로 알려진 제이컵 앤서니 챈슬리는 지난 6일(현지시간) 미 의회에 난입했다. 그는 불법 침입과 의회 내 난폭 행위로 기소됐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연단에 올라 이들을 향해 “우리는 훨씬 더 열심히 싸워야 한다”며 “우리는 의회로 갈 것이다”고 외쳤다. 이어 “약해서는 이 나라를 되찾을 수 없다. 여러분은 힘을 보여줘야 하고, 강해져야 한다”며 사실상 시위대의 의회 진입을 독려하는 발언을 했다.

◇트럼프 재선 실패하며 휘청

큐어넌에게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극우 음모론이 국가안보의 위협이 된다는 판단으로 미 연방수사국(FBI)는 2019년 큐어넌을 미국의 잠재적 위협이라고 평가했다. 또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주요 소셜미디어들도 큐어넌의 게시물들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팔러’와 ‘갭’ 등 우파 전용 소셜미디어로 이동하거나 ‘savethechildren’ 등 전혀 상관없는 태그를 통해 감시망을 피했다.

한 큐어넌 지지자가 "savethechildren"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 큐어넌 지지자가 "savethechildren"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대선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하며 큰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재선을 확신했던 큐어넌 지지자들은 큐어넌이 주로 활동하는 사이트 ‘8kun’에 몰려가 “트럼프가 졌다. 우리가 속은 거냐” 등의 게시물을 남겼다. 특히 큐어넌의 창시자격인 Q가 트럼프 재선 실패 후 일주일 정도 게시물을 올리지 않고 ‘8kun’의 운영자였던 론 왓킨스가 갑작스럽게 물러나며 혼란은 더 커졌다.

하지만 이후 수십만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큐어넌 계정들이 부정선거론을 들고 나왔다. 이들의 부정선거 주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극성 지지자들 사이에 공유됐고, 부정선거 주장은 지난 6일 워싱턴DC 시위 등 실제 시위로까지 이어졌다.

큐어넌의 상징인 Q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한 여성이 지난 6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큐어넌의 상징인 Q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한 여성이 지난 6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포스트 트럼프’ 큐어넌 운명은

큐어넌의 미래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펙트체크 기관인 로지컬리(Logically)의 조 온드락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12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의 승리는 큐어넌을 우왕좌왕하게 했다”며 “큐어넌의 현재 상태를 성공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믿어 의심치 않던 트럼프 재선이 실패하며 기반이 불안정해졌다는 것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워싱턴 DC 연방의회에 난입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워싱턴 DC 연방의회에 난입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메시지 확산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거대 SNS에서 큐어넌에 대해 강한 규제에 들어가면서다. 비록 ‘갭’ 등 우파 전용 소셜미디어에 새로 자리를 잡았지만, 아무래도 사용자가 적어 세 불리기에는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특히 6일 의회 점거 사태가 발생한 후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본격적으로 극단주의 세력을 걸러내기 시작했다. 트위터는 8일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과 약 48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했던 큐어넌 신봉자 ‘프레잉 메딕(prayingmedic)’ 계정을 영구적으로 정지시켰다. 애플, 구글 등은 각각 앱스토어와 플레이스토어에서 팔러 배포를 잠정 중단했고, 아마존 역시 팔러에 대한 서비스 중단 계획을 밝혔다.

트위터가 지난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트위터 캡처]

트위터가 지난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트위터 캡처]

그렇다고 우려가 잦아드는 건 아니다. 팩트체크 업체인 뉴스가드의 편집장은 FT와의 인터뷰에서 “큐어넌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변이하듯 퍼지고 있는데, 이것은 우려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큐어넌을 다루는 프랑스의 한 웹사이트는 온라인 인기도 순위가 지난해 7월 말 1300위에서 11월 말 293위까지 급등했다.

실제로 큐어넌은 미국 본토에서 벗어나 유럽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해 8월 30일 독일 베를린에서 3만8000여명이 모인 이른바 ‘노마스크 시위’를 주도한 세력에 큐어넌을 받아들인 현지 극우파도 있었다.

그는 이어 “힐러리 클린턴 구속 등 큐어넌의 예측은 이미 여러 차례 빗나갔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했다고 지지자들의 믿음이 흔들릴 것 같지 않다”고 분석했다.

소셜미디어들의 견제 장치도 음모론 확산을 막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가드가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페이스북이 큐어넌을 규제한 후에도, 많은 팔로워를 가진 개인 계정을 중심으로 음모론이 나오고 있다.

NYT 칼럼니스트인 파하드 만주도 지난 6일 “큐어넌은 이미 길들기에는 너무 커졌다”며 “이 정도 수준의 영향력이 1월 20일 정오(바이든 취임)에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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