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유지군·IAEA···유엔 '전설의 해결사' 어쿠트 하늘로 가다

중앙일보

입력 2021.01.04 16:17

업데이트 2021.01.04 16:34

지난 2013년 유엔 사무국과 인터뷰하는 브라이언 어쿠트 전 정무담당 특별사무차장. [유튜브 캡처]

지난 2013년 유엔 사무국과 인터뷰하는 브라이언 어쿠트 전 정무담당 특별사무차장. [유튜브 캡처]

국제연합(UNㆍ유엔)의 창립 멤버이자 ‘유엔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렸던 브라이언 어쿠트 전 유엔 정무 특별사무차장이 지난 2일 미국 매사추세츠 타이링험의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이 3일(현지시간) 전했다. 101세.

1945년 창립멤버, 40년 간 사무총장 5명 보좌 '산증인'
유엔 평화유지군, IAEA 설립 등 유엔 기틀 만든 인물
2차대전 참전 英장교 출신…"뛰어난 중재자·해결사"

영국공군의 정보장교 출신인 어쿠트 전 차장은 1945년 유엔의 창설부터 86년까지 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 장장 40년간 유엔에 몸을 담았다. 유엔 역사상 9명의 사무총장이 배출되는 동안 5명을 보좌한 ‘최장수 2인자’이기도 하다.

그는 제2차 중동전쟁(56년), 키프로스 분쟁(64년), 인도ㆍ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전쟁(65년)과 7~80년대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이팔) 분쟁 조정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그를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분쟁 지역의 뛰어난 중재자이자 외교 문제 해결사(troubleshooter)”로 평가했다.

그의 대표적인 유산은 40년대 말 유엔평화유지군(PKF)을 도입한 것이다. '파란 베레모'가 상징인 평화유지군은 유엔헌장에 규정되지 않은 개념이었지만, 이·팔 지역 등 분쟁지에서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어쿠트 전 차장은 임기 동안 전세계 13차례의 평화유지군 작전을 지휘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유엔 평화유지작전의 진정한 강점은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데 있다”고 말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88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WP는 그가 57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설립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2013년 레바논 남부 분쟁지역에 배치된 유엔 평화유지군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013년 레바논 남부 분쟁지역에 배치된 유엔 평화유지군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NYT는 2차 세계대전 영국공군 정보장교 출신인 그가 ‘제임스 본드(영국 정보국 비밀요원)’는 아니었지만, 그에 필적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고 전했다.

어쿠트 전 차장은 1942년 1200피트(약 356m) 비행 낙하 훈련에서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척추뼈가 부러지는 대형사고를 당해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후 몇 개월 만에 회복해 군에 복귀했고, 연합군의 독일 상륙작전인 ‘오퍼레이션 마켓 가든(44년)’에도 참여했다. 이 작전이 실패할 수 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가 묵살됐던 일화는 후일 영화로도 제작됐다.

군 제대 후엔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교수의 소개로 유엔 설립위원회 사무총장의 개인 비서로 유엔에 첫발을 디뎠다.

61년에는 콩고공화국에 분쟁 중재를 위해 들어갔다가 반군에 납치, 살해당할 위기에 몰렸다가 극적으로 풀려났다. 82년 이ㆍ팔 협상을 위해 눈보라를 뚫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리더인 야세르 아라파트를 찾아다닐 땐, 영하의 소형 항공기 안에서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위스키를 한 병을 비우며 버텼다고 한다. WP는 “어쿠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모두 받아들인 몇 안 되는 중재자였다”고 묘사했다.

2011년 나이지리아 유엔평화유지군이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에서 무장 전경을 제압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011년 나이지리아 유엔평화유지군이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에서 무장 전경을 제압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어쿠트 전 차장은 냉전 시기 유엔이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는 과정도 생생하게 지켜봤다. 그는 유엔 사무국과의 인터뷰에서 “소련 사람들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유엔군 참전을 지지한)트뤼그베 리 유엔 사무총장을 쫓아냈고, 미국의 매카시즘을 따르는 사람들은 유엔 사무국의 직원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닌지 추궁했다”고 회상했다. 정무담당 사무차장을 맡은 이후론 70년대 중반까지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문제가 다뤄지는데도 관여했다.

주유엔 한국 대사를 지낸 오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은 “어쿠트는 랄프 번치 전 사무차장 등과 함께 지금의 유엔을 만든 대표적인 1세대들”이라며 “냉전시기 동서 대립의 상황에서도 유엔이 균형 잡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WP는 “유엔에서 보내는 시간의 4분의 3은 아무것도 안 되지만, 어느 순간 가치를 발한다. 하루하루는 절망적이지만, 쌓이다 보면 결국은 작동한다”는 어쿠트의 발언을 인용했다.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 앞에 숱한 좌절을 겪으면서도 반세기 넘게 작동해 온 유엔 체제의 가치와 중요성을 압축한 설명이다.

1919년 2월 영국 남부 브리포트에서 태어나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학교와 옥스포드대를 졸업했다. 유엔 본부가 자리 잡은 뉴욕으로 건너온 후 미국에서 줄곧 살았다. 아내와 6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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