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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빠져 파김치가 되는 병, 앓고 난 후의 나를 더 사랑한다"

중앙일보

입력

발병 전의 지나영 교수. "매일같이 복싱, 요가, 조깅을 즐기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지나영 교수 제공]

발병 전의 지나영 교수. "매일같이 복싱, 요가, 조깅을 즐기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지나영 교수 제공]

1976년 대구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또 딸이라며 한탄한 아버지는 1980년에야 출생 신고를 했다. “커다란 바퀴벌레가 일상처럼 날아다니는 곳에서 자랐다”는 그는 2002년 미국 의사 국가고시를 상위 3%의 성적으로 통과했다. 2008년부터 존스홉킨스 연계 병원인 케네디 크리거 인스티튜트에서 소아정신과 교수로 일하는 지나영(44)의 이야기다.

존스홉킨스대 소아정신과 의사 지나영

놀랍게 변화한 삶이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2017년 시작됐다. 그해 11월 지나영 교수가 진단 받은 병의 이름은 신경매개저혈압. 반년 전 처음 나타난 증상은 등 쪽의 근육통이었는데 순식간에 온몸을 가눌 수 없을 지경이 됐다. 오한, 현기증, 위장장애, 견디기 어려운 통증이 이어졌다. 지 교수는 이달 낸 책 『마음이 흐르는 대로』(다산북스)에서 “몸이 감염과 싸우는 면역반응이 잘못돼 오히려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 반응으로 자율신경계가 공격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으로 인해 1년 가까이 직장을 쉬어야 했고, 2년 동안 제대로 일어나고 걸을 수도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달 중순 한국에 들어와 다음달까지 머문다. 29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지 교수는 “지금도 파김치가 되기 일쑤고, 일상적인 에너지를 쓰고 나면 한 시간 정도 누워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책은 바닥에 붙어 지내던 2년 반동안 썼다. 누워서도 컴퓨터를 보고 쓸 수 있는 스탠드를 사서 침대 위에 부착해놓고 그걸로 쓴 책이다.“억수로 열심히 살았던”사람이 아프게 되면서 자신을 우선순위에 두고 삶을 돌아보게 된 이야기가 책에 들어있다.

“삶이 너무 바빴다. 처음엔 영어도 서툴렀는데 정신과 환자를 보는 것도 쉽지 않았고, 연구에, 교육에, 논문 내고 정말 힘들게 살았다. 그런데 확 아프고 나니까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대구 가톨릭대학 의과대학 졸업 후 서울의 한 병원에 레지던트를 지원했다 낙방했고, ‘이럴 바에 미국에나 가보자’하고 떠났다. 하버드 의대의 뇌영상 연구소를 거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정신과에서 레지던트, 펠로우 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우울증이나 조현병을 앓는 정신과 환자들이 명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힘없이 이야기 하면 몇몇 단어 외에는 알아듣지 못했던 아찔한 절망감을 경험했다”고 했다. 이걸 이기기 위해 하루 8시간 환자를 본 후 나머지 8시간은 그들에 대한 노트를 쓰고 영어 문장을 읽었다.

의사인 남편은 그에게 ‘핏불(pit bull, 공격성 강한 맹견)’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렇게 맹렬하던 삶은 병과 함께 멈췄다. “마치 신의 장난처럼, 나는 내 성격과 반대로 살아야만 하는 병을 하루하루 감당하고 있다.” 몸이 열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그는 “몸과 마음에 충분한 휴식 시간을 주며 소중한 사람들과 최대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할 수 없는 일을 거절하는 방법, 내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원칙도 익혔다. “처음에는 정말 억울했고 지금도 가끔 서럽다”고 하지만 “억울할 때마다 억지로 좋은 점을 찾아내는 훈련을 했다. 이젠 병을 앓기 전의 나보다 앓고 난 후의 내 모습을 더 사랑한다”고 말했다.

지 교수의 투병은 끝나지 않는다. 그는 “죽을 병도, 희귀병도 아니지만 낫지 않는 병”이라고 설명했다. “무리하지 않고, 물과 소금을 대량으로 섭취하면서 혈압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병을 얻은 후 그는 자신의 인생 뿐 아니라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눈을 돌렸다. “한국에서 25년, 미국에서 20년을 살았다. 한국의 젊은, 특히 어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마음이 아팠다. 주위에서 원하는 것에 맞춰가면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소아정신과 의사로서 한국어로 책을 쓰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지 교수는 “내 인생을 전체로 본다면 아주 우연한 기회가 많았다. 나는 정신과 의사가 돼서 사람들을 돌보겠다는 정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그 기회들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지금 한국의 청소년들이 남과 비교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열심히 걸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의사로 환자 보고, 연구하는 것은 좀 놓고 내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돌리고 싶다”는 그는 이처럼 국내 청소년의 교육,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 이달 한국에 들렀다. 소아정신과 지식을 바탕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고,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두번째 책으로 쓰고 있다. “미국에 오래 살았지만 나는 100% 한국 사람이다. 한국에 기여하고 싶다. 한국 청소년들의 행복지수가 바닥인 것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그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모든 사람이 똑같지 않아도 되고, 각자의 가치가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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