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소아암병동 일일교사로 나선 설기현 선수

중앙일보

입력

"힘내서 건강해지면 꼭 축구를 가르쳐 줄게"

2일 오전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8층 소아암병동에 마련된 '늘푸른 교실'.

만성질환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이 교실에서 일일교사로 나선 국가대표축구팀 설기현 선수(벨기에 안더레흐트)는 힘든 투병생활에도 해맑은 웃음을 지닌 어린 환자들의 모습에 가슴 뭉클해 했다.

설 선수는 "어린이들이 힘든 수술과 투병생활을 이어가면서도 활기찬 모습이어서 다행"이라며 "꼬마 환자들도 이렇게 꿋꿋하게 병을 이겨가고 있는데, 최근 오른팔 부상에 이틀을 앓아 누운 채 엄살을 부렸던 내 모습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할 줄 아는 것은 축구 밖에 없는데...환자인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칠 수 없어 안타깝다"며 "한국축구가 4강 진출을 이룬 것처럼 모두 다 힘을 내 완쾌해 파란 잔디 위에서 뛰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날 꼬마 환자들은 설 선수와 차례로 다정한 대화를 나눈 뒤 병원측에서 준비한 미니 축구공에 설 선수의 사인을 받아갔다.

뇌종양으로 투병중인 이루라(15.여)양은 "16강전에서 종료직전에 동점골을 넣은 설 선수를 직접 만나게 돼 기쁘다"라며 "어서 다 나아 친구들과 축구공을 직접 차며 뛰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설 선수의 사인을 받아들고 맑게 웃던 소아암 환자 유우현(3)군의 어머니 김현미(27)씨는 "지난 월드컵을 본 뒤 아이가 축구를 아는지 공을 보면 좋아하고 자꾸 차려고 한다"며 흐뭇해 했다.

이 날 자리를 마련한 늘푸른교실 교장 신희영(50.서울대병원 소아과 교수)씨는 "완치율이 80%에 달하는 소아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완치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며 "설 선수의 방문은 아이들에게 치료에 대한 희망을 복돋아 주는 효과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100여 개의 미니 축구공에 사인을 마친 설 선수는 "다음에 오면 축구를 가르쳐 줄게"라는 약속을 하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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