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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life] 하루쯤은 영화 주인공처럼 먹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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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을 넘어선 지금도 영화 속의 여주인공을 꿈꾸고 사는 철없는 아줌마다. 그래서인지 여자이길 포기하지 않았다는 발악처럼 가끔 나만을 위한 화려한 식탁을 원하곤 한다. 특히 요즘처럼 나뭇잎들이 화려했던 초록을 접고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계절이면 더욱 그렇다.

서울 청담동 나폴레옹과자점 옆 골목 언덕 위에 있는 '카페74(02-542-7412)'는 그런 내 마음을 달랠 때 자주 찾는 레스토랑이다. 대리석 같은 흰색 건물은 중후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다. 길가로 나와 있는 창문 밖 테라스는 프랑스 거리의 노천 카페를 연상케 한다. 짙은 밤색의 테이블과 하얀 색의 벽은 이국적 분위기를 가득 담고 있다.

메뉴판을 펼치면 동서양이 뒤섞인 다양한 음식에 입맛을 다시게 된다. 멕시코 요리와 이탈리아 음식의 혼합, 또는 중국식 조리법에 스파게티 국수를 사용한 것 등.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국경없는 음식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황홀함도 잠시, 꼬리를 문 가격표로 눈길이 옮겨지면 일단 주춤한다. 경기도 용인에서 '탈(脫)아줌마를 꿈꾸며 원정(?)'온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청담동의 다른 레스토랑에 비하면 높은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다시 분위기에 취해본다.

일품 요리 중 크랩 리조토(2만6천원)는 개인적으로 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은 메뉴. 주변 친구들에게 푸드 스타일리스트나 음식 평론가도 만점을 주지 않을 수 없는 메뉴라고 말할 정도다. 접시 한복판에 버티고 앉은 붉은색 꽃게 한마리. 게 딱지 아래로 고소한 맛의 리조토가 숨어있다. 달착지근하고 비릿한 게살이 알맞게 익은 쌀알과 부드럽게 조화를 이룬다. 점심메뉴로 가장 인기있다는 상하이 파스타(1만8천원)는 각종 해산물을 마른 고추와 함께 조리해 매콤하면서도 개운하다. 유럽 분위기가 잔뜩 들어가 있지만 입안의 느낌은 우리 것과 무척 친숙하다.

우리나라 칼국수를 닮은 넓적한 스파게티 면으로 만든 카르보나라(1만7천원)는 베이컨 크림소스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강하게 와닿는다. 후식으로 마시는 카푸치노(9천원)는 크림 위에 초코시럽으로 예쁜 문양까지 그려넣어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볕이 좋은 날엔 테라스 테이블을 예약할 것을 권한다. 식사하는 시간 내내 어떤 영화의 여주인공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이행순(주부.경기도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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