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건강 생식] 생식 요리로 차린 환갑 잔칫상

중앙일보

입력

'생식마을에 웬 케이크?'

지난 22일 오전 11시30분쯤 속리산 끝자락에 위치한 한농복구회 하나마을. 마을 7백여 주민 모두가 생식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경북 상주에서 두시간여 산길을 달려온 기자는 순간 헛걸음한 것이 아닌지 의심해야 했다.

환갑을 맞은 유근연(사진)씨와 3백여명의 축하객을 위한 잔칫상에는 케이크와 떡.깨강정.비빔밥 등 형형색색의 음식이 차려져 있어 여느 잔칫집 음식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잔치상에 오른 모든 음식은 불에 익히지 않은 순수한 생식.

◇ 생식은 맛있으면 안되나요?

주민들이 생식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 평소 병약하던 주민 김춘미씨가 생식으로 건강을 되찾은 것이 계기였다. 얼마 안가 전 주민이 동참하게 됐다. 문제는 풀과 날곡식은 '맛이 없다'는 사실. 아이들이 꺼렸고, 손님들이 왔을 때도 곤란했다. 주부들이 앞장서 생식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곡분에 땅콩.호두와 같은 견과류를 넣어 고소함을 더하고 말린 과일이나 꿀을 갈아넣어 단맛을 첨가했다.

색깔도 고려했다. 삶은 팥 앙금 대신 까만 색을 내는 흑미 가루나 검정깨와 꿀을 넣고, 노란 색깔의 송홧가루나 붉은 색의 토마토 등 각종 야채의 천연색깔을 배합해 시각 효과를 높였다.

요리품평회도 열었다. 한농어머니회 부회장인 박금화씨는 "가정마다 독특하게 요리를 몇 가지씩 들고나와 시식하며 만드는 방법을 교환한다"고 말했다.

밀가루에서 분리한 글루텐 성분을 반죽해 불고기 양념을 넣은 밀불고기(진짜 불고기처럼 생겼음), 노인들이 먹기 좋은 미역죽이나 잣김국,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생식초콜릿.생식찹쌀떡.사과캐러멜 등 기상천외한 음식들 모두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후식으로 나오는 솔잎차 역시 끓이지 않고 가루를 물에 타 마신다.

◇ 3무(無) 농법

마을 주민들은 요즘 매우 고무돼 있다. 독일에 본부를 둔 국제유기농운동연맹(IFOAM)에 가입됐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 지난 6월10일 정부로부터 수입유기농산물 인증업무 권한까지 위임받은 한농복구회로는 경사가 겹친 셈이다.

한농마을이 94년부터 추구해온 무농약.무제초제.무비료의 3무(無)농법이 결실을 거둔 것이다. 이 마을의 생식은 청정지역에서 철저하게 관리된 유기농산물 덕분이다. 마을 대표인 유근호씨는 "생식이 아니라 '천연식'으로 불러 달라"고 주문한다. 하늘이 내린 그대로를 먹으니 천연식이 맞다는 것이다.

생식요리는 불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도 파와 마늘.고춧가루와 같이 자극적이고 강한 향을 내는 부식을 쓰지 않는 게 특징이다. 야채나 곡물이 가지고 있는 자연의 맛을 그대로 맛보기 위해서다.

식초 대신 레몬즙을 넣고, 간장은 물론 된장.고추장과 같은 조미식품도 사용하지 않는다. 장류는 삶은 콩을 이용하는 데다 발효시켜 천연의 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간을 맞추기 위해 약간의 소금(하루 1인 섭취량 2~4g으로 한국인 평균의 5분의1 정도)만을 칠 뿐이다. 김치도 겉절이만 먹고, 음식을 며칠씩 보관하지 않는다.

◇ 잔병치레 안 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을에선 단 한명의 뚱뚱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다. 피부도 농촌사람답지 않게 맑고 깨끗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곳에 들어와 한의원을 열고 있는 백희성 원장은 "생식 전에는 하루 10여명의 환자가 찾아왔지만 지금은 한 두명으로 줄었고, 그나마 노인들이나 다리를 삔 환자"라고 말한다.

생식 후에 10㎏ 이상 살이 빠진 사람도 많고, 고혈압.당뇨 등 성인병은 물론 감기 같은 사소한 질병들도 사라졌다고 했다.

주민 전민형(40)씨의 아침식단은 곡분(곡물 가루) 세 술과 씀바귀.민들레.쑥.케일과 같은 잎사귀 몇 개, 무.감자.고구마 몇 쪽이 전부다. 아침식사가 뿌리 중심이라면 점심식사는 오이나 호박과 같은 열매 중심이다. 저녁은 곡분조차 먹지 않고 과일이 주식이다. 성인 하루 권장열량인 2천1백~2천5백㎉의 절반도 안 되는 1천㎉ 남짓이나 될까.

그런데도 힘은 넘치고 피로와 수면시간이 줄었단다. 오전 5시30분이면 밭일을 하는 마을 주민의 노동강도는 결코 만만치 않다. 한농복구회의 문화원제(長 대신 형제라는 뜻의 弟를 쓴다) 이규호 박사는 "병든 땅에서 병든 농산물이 생산되고, 이를 먹고 사람이 병드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며 "생식은 흙을 살려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생명회복 운동"이라고 말했다.

▶동행취재 : 이롬라이프 생명과학연구소 박미현 박사, 삼성서울병원 김은미 영양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