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하경 칼럼

저 낯선 ‘마상의 절대자’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0.12.2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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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비가 올 때까지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다. 일부이긴 하지만 ‘나쁜’ 수사도 마찬가지다. 죄가 나올 때까지 탈탈 털어서 범죄자로 만든다. 별건 수사와 피의사실 흘리기가 동원된다.

정권보호 위해 윤석열 공격 올인
절실한 검찰개혁 걸레로 만들고
코로나 백신 실기…레임덕 위기
나만 옳다는 무오류주의 버려야

모욕과 낙인에 산 송장이 된 피의자는 ‘저승사자’인 검사와 선이 닿는 전관(前官) 변호사에게 운명을 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전근대적 악습의 구조다. 정치적 의도까지 들어가면 감당 불가의 고차방정식이 된다. 검찰개혁이 절실한 이유다.

이렇게 중요한 검찰개혁을 문재인 정권은 재활용조차 불가능한 걸레로 만들어버렸다. 공수처의 순수성도 더 불신받고 있다. 국민 인권보호가 아닌 정권비리 수사 차단을 위한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를 지상 목표로 삼은 결과다. 문 대통령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주도한 윤 총장 ‘정직 2개월’ 징계를 16시간 만에 재가했다.

따라서 서울행정법원 홍순욱 부장판사의 ‘직무정지 집행 정지’ 결정은 통치권자에 대한 사법부의 엄중한 심판이다. 대통령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고, 윤석열 퇴출을 대전제로 한 정권의 검찰개혁은 명분도, 동력도 사라졌다. 스스로 레임덕 위기를 부른 셈이다.

문제는 검찰개혁에 올인하느라 그토록 자랑했던 코로나19 대처까지 엉망이 됐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27개국은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내년 상반기 중에 집단면역에 도달한다. 한국은 백신 구입을 실기(失期)해 내년 겨울까지 코로나로 고통받게 된다. 문 대통령이 “해외에서 백신을 확보하라”고 한 지시는 주요국의 백신 선점이 끝난 뒤인 9월에야 나왔다.

백신 선(先)구매는 “쓰고 남더라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면책 보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김우주 고려대 의대 교수는 “선구매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고 촉구해 왔다. 하지만 이 정부에는 소귀의 경 읽기다. 타이밍을 놓쳤다는 책임론이 불거지자 “최종 결정권은 질병관리청장에게 있다”(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는 언급이 나왔다. 정은경 청장이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수습된 이후 역학조사관 34명을 처음으로 확보해 실전 훈련을 시켰고 신속진단검사를 도입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 사태에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정부의 누구도) 전화든, 간담회 요청이든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전문가의 경험을 이렇게 무시해도 좋은 것인가.

2009년 4월에 발생한 신종플루 팬데믹을 겪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달랐다. 전병률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타미플루 1000만 명분을 확보할 때 전재희 복지부 장관과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이 청와대에 들어가 이 대통령의 까다로운 질문을 받았다. 대통령은 2500억원을 내줬다”고 했다. 국산 백신 개발에 성공하고, 획기적 항바이러스 약인 타미플루를 해외에서 구매하면서 11월께부터 신종플루가 진정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이후 3년반 동안 정의·공정이라는 추상적 이념에 치우쳐 아무런 업적도 남기지 못했다. 내치(內治)에선 소득주도 성장, 급진적 최저임금제, 부동산 정책, 탈(脫)원전 등 꺼내든 카드마다 부작용만 양산했다. 외치(外治)도 마찬가지다. 일본 모테기 도시미쓰 외상이 “장식품”이라고 무시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줄곧 중용하고 있다. 성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 이 지경이 됐는데도 청와대의 어느 참모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의 무오류주의가 근본적인 문제다. 나와 내편은 항상 옳고, 정의롭다는 비현실적 인식이 소통을 단절시키고 있다. 조국이 법무장관직을 사퇴하자 올해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다. 민심을 너무도 모른다. 그러니 맹목적 충성파들은 “검찰과 사법이 하나가 돼 법적 쿠데타를 만들어낸 것 아니냐”(김어준), “윤석열 총장 탄핵안을 준비하겠다”(김두관)며 심기경호에 나서는 것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유럽의 봉건질서를 뿌리부터 뒤흔든 나폴레옹은 예나의 젊은 철학자 헤겔로부터 “마상(馬上)의 세계정신(Weltgeist)”이라는 사실상의 신격(神格)을 부여받았다. 문 대통령은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시킨 자신의 통치행위에 대한 적부(適否)를 심판하는 법원 결정을 눈앞에 두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5부요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스스로를 초월적 ‘마상의 절대자’로 착각해 3권분립이라는 헌법의 경계선을 침범한 부적절한 제의(祭儀)였다.

21세기의 한국에는 ‘마상의 절대자’가 아닌 ‘친근한 이웃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권력욕에 눈이 먼 정치인·관료보다 훨씬 분별력 있는 교양시민· 전문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의 귀환이 요청된다. 진영의 장기집권 플랜을 실현할 수단으로 검찰개혁과 코로나19 방역을 이용하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저 낯선 ‘마상의 절대자’는 결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이하경 주필·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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