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하경 칼럼

문 대통령은 윤석열 죽이는 ‘원님 재판’ 중단시켜야

중앙일보

입력 2020.12.14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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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후 ‘노사모’에게 앞으로 뭐하려느냐고 물었더니 마치 약속한 것처럼 ‘견제’라고 외치더라.” ‘원조 친노(親盧)’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개한 일화다. 지금의 ‘문빠’는 노사모와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불온시한다.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을 겪은 뒤 “문재인을 지키자”고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민주화를 쟁취한 진보가 ‘다름’을 수용하지 않는 극단주의로 달려가고 있다.

코로나로 방역·경제 무너지고
전세대란·집값 폭등 심각한데
윤 찍어내기를 최우선 과제 삼아
극단주의는 타락한 진보의 흉기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선 와중에 문 정권은 추미애 법무장관을 앞세운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착각하고 있다. 병상이 모자라 환자와 의료진이 비명을 지르고, 백신 구입도 실기(失期) 해 방역과 민생경제가 동시에 무너질 판인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일등공신 윤석열은 정권 심장부를 향해 칼을 겨눈 ‘대역죄’로 극형(極刑)을 선고받고 포박돼 있다.

검찰총장 윤석열 징계의 청구자와 심판자는 사실상 법무장관 한 사람이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누구도 자기 사건의 심판자가 될 수 없다(Nemo iudex in sua causa)’고 한 자연법적 정의에 어긋난다”고 했다. 그런데도 합당한 이유없이 검찰총장을 죽이는 ‘원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공수처법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권력형 비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했다. 하지만 여당이 약속한 야당의 비토권은 일방적인 법개정으로 사라졌다. 청와대를 겨냥한 원전 수사, 울산시장 선거 수사는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명백한 문재인 처벌 방지법”(오세훈 전 서울시장), “권력자들이 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괴물 조직이 탄생하게 됐다”(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개혁의 명분은 흐릿해졌다.

지금은 문 정부가 ‘원님 재판’이나 할 정도로 한가한 시절이 아니다. 최악의 역병(疫病)과 싸우고 전세대란, 집값 폭등을 수습해야 한다. 대통령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도 핵심인 원전 활용 방안을 배제하고 있어 산업계가 패닉 상태다. 국가기후환경회의조차 “탈원전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놓고 2050 탄소중립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여권이 힘으로 밀어붙인 5·18 역사왜곡 처벌법에 대해서는 “국가에 의한 역사 독점”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견(異見)을 봉쇄한 박근혜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다를 바 없다. 스물한 살에 광주민주항쟁을 직접 겪은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도 “법으로 정해서 의견과 대화 내지는 토론 자체를 못하게 하는 것은 안 된다”라고 반대한다.

이런데도 집권세력의 그 누구도 대통령에게 “아니되옵니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검열관이자 최고재판관인 문빠의 눈치를 살피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재인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나만 옳다”는 협량한 세계관에 나라 전체가 휘둘리는 굴욕적인 상황이다.

추미애 장관은 무리한 윤석열 찍어내기로 법무부·검찰의 추종자들이 등을 돌리고, 법원까지 총장 직무배제 결정에 제동을 걸자 노 전 대통령 영정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친노를 뿌리로 한 문빠의 마음만 잡으면 대권가도에 날개를 달게 된다고 믿었던 것일까.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문빠에 대해 “상식적인 분들” “당의 에너지원(源)”이라고 발설했다. 그의 장점인 중도·합리주의 이미지는 퇴색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판·검사는 퇴직 후 1년간 공직 후보자로 출마할 수 없다”는 ‘윤석열 대선 출마 금지법’을 발의했다. 진영을 선명하게 가르고 “상대를 파멸시켜야 내가 산다”는 극단주의가 정치를 질식시키고 있다. 반공보수의 폭력적 매카시즘이 타락한 진보의 흉기로 부활한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진보의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문 대통령이 초래한 부조리극이다. 그는  2017년 대선 경선 때 위협적인 경쟁자였던 안희정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감히 우리 ‘이니’를…”이라며 안희정을 문자폭탄으로 공격하는 문빠의 행동을 “경쟁을 흥미롭게 만드는 양념”이라고 했다. 비판을 봉쇄하는 자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문빠는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서 문재인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인가. 상식과 합리를 중시하는 중도 지지자들이 질려서 떠나가고 있다. 이게 과연 문재인을 지켜주는 방식인가.

안희정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문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견의 논쟁을 거부하시면 안 돼요. ‘우리 대통령이 하겠다는데, 니가 왜 문제 제기야!’ 이러면 공론의 장이 망가져요. 그러한 지지 운동으로는 정부를 못 지킵니다.” 소름끼치도록 정확한 예언이다.

대통령은 문빠에게 “이젠 제발 나를 놔달라”고 해야 한다. 윤석열 찍어내기를 중단시켜야 한다. 곤충의 탈피(脫皮)는 생사를 건 극한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이뤄진다. 성장과 생존을 위한 과정이다. 당장의 손실을 각오하고 극단주의자의 간섭에서 벗어날 때 문재인 정권은 정치적 성장을 하게 된다. 대통령 본인과 국민을 살리는 길이다.

이하경 주필·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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