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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 만드는 단백질을 알면 불치병도 정복

중앙일보

입력

우리 몸은 약 1백조 개의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화학반응을 통해 생명을 영위하고, 나아가서는 다른 동물과 달리 고차원적인 정신활동도 한다.

생명이 없는 물질이 모여 생명 현상을 만들어내고, 또한 대단할 것이 없는 부분들이 모여 지능을 나타내는 것이다.

생명 현상에 관여하는 생체 화합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단백질이다. 왜냐하면 음식을 소화하고,병원균 같은 외부에서 침입한 적과 싸우고,유전정보를 복사하는 등 모든 생명 활동을 실제로 수행하는 화합물이 단백질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장이 정보를 가지기 위해서는 자음과 모음이 적절히 조합되어야 한다. 단백질이 다양한 기능을 가지기 위해서는 각각의 기능에 해당하는 정보를 단백질 분자 내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단백질도 자모에 해당하는 어떤 것들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사용되는 한글의 자모는 24개고, 영어의 알파벳은 26개다. 20개 정도의 자모가 있어야만 그것들을 조합해서 의미 있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단백질도 20 종류의 아미노산이라는 작은 분자들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아미노산 분자가 바로 단백질이라는 문장을 만드는 자모인 셈이다.

21세기 과학에서 단백질의 의미는 무엇일까? 과학의 남은 최대 과제 중 하나는 암과 같은 질병을 극복해서 인간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그러자면 우리 몸의 핵심 화합물인 단백질의 기능을 잘 이해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질병에 관련된 단백질을 연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단백질의 집합체를 다루는 학문(단백질체학)이 유전체학(지노믹스)에 이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만일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데 관련된 단백질이 과다하게 생산된다면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바뀔 수 있다. 세포가 무절제하게 자라는 것이 암이기 때문이다. 항산화 효과를 나타내는 단백질이나 외부에서 들어온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단백질이 부족해도 암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상세포와 암세포에 들어 있는 단백질을 비교해서 암세포에 유난히 많거나 적게 들어있는 단백질을 찾아내면 암의 조기진단이나 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얻게 된다. 이런 연구를 하려면 세포 한 개에 1천조분의 1g 정도 들어있는 미량 단백질의 분석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단백질 분석이 큰 의미를 가지게 됨에 따라 미량의 단백질을 정확히 분석하는 질량분석방법의 기초를 제공한 다나카 고이치와 존 펜이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것이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정구흥 교수와 삼성메디컬센터의 김용일 교수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간염바이러스에 의한 간암 환자의 간세포에서 21가지 단백질이 정상세포에 비해 양이 크게 늘거나 줄어든 것을 알아냈다. 그 중에는 예상대로 항산화 효과에 관련된 단백질과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단백질도 들어 있었다.

사람의 세포에는 수만종류의 단백질이 들어 있고 이 중 많은 부분이 미지로 남아있다. 우리나라에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유명희 박사, 서울대 화학부의 서세원 교수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단백질 연구자들이 있다.

우리도 단백질체학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고 우수한 학생들이 이 분야에 많이 진출하면 앞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업적도 나올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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