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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론 안돼." 콧대 높던 중국 백년기업들이 변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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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 라떼 한 잔, 계피맛 카푸치노 한 잔 나왔습니다~!”

[사진출처=웨이보 캡처]

[사진출처=웨이보 캡처]

카페 특유의 커피 볶는 냄새인 듯, 달인 약재 향인 듯 오묘한 향기를 내는 이곳.

여기는 3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황제의 약방', 동인당(同仁堂)이다. 베이징을 여행하는 한국인이라면 꼭 한 번 들러 우황청심환을 사서 돌아간다는 바로 그곳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라오쯔하오(老字号) 중 하나이기도 하다.

라오쯔하오 동인당 [사진출처=바이두바이커]

라오쯔하오 동인당 [사진출처=바이두바이커]

100년 가는 기업 없다고? 우리는 수백 년 자리 지켰다.

라오쯔하오란 한 마디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기업들이다. 국가에서 직접 공인한 곳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곳으로는 칭다오 맥주(맥주), 구이저우마오타이(고량주), 취안쥐더(북경 오리), 거우부리(만두) 등이 있다.

라오쯔하오 구이저우마오타이 [사진출처=바이두바이커]

라오쯔하오 구이저우마오타이 [사진출처=바이두바이커]

100년 살아남는 기업 없다는 요즘 세상에 수백 년간 한자리를 지켜낸 이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대체로 콧대가 높다. 가게 문 앞에 붙여진 '라오쯔하오(老字号)’ 이름판은 이들 자신의 자랑이자, 중국의 자랑이다.

중국어 교과서들에도 자주 등장하는 라오쯔하오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중국어 교과서를 통해 중국을 처음 접한다. 중국을 공부하는 이방인들에게 다 알리고 싶을 만큼, 자부심을 느끼는 중국의 문화라는 것이다.

국가공인 라오쯔하오 문장 [사진출처=바이두바이커]

국가공인 라오쯔하오 문장 [사진출처=바이두바이커]

콧대 높은 이들, 시장의 평가는 냉정했다.

하지만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종종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고개를 숙이기보단, 꼿꼿이 허리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들의 높은 콧대가 소비자들은 불편했다. '고'가격, '고'자세, '저'가성비. 라오쯔하오의 명성을 듣고 각지에서 찾아온 소비자들은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의심쩍어하는 소비자가 온라인에 하나둘 모이자, 의심은 점점 분노로 변해 갔다. 결국 사건이 터졌다.

거우부리 만두 폭로 당사자 [사진출처=광동신문]

거우부리 만두 폭로 당사자 [사진출처=광동신문]

[사진출처=진르터우탸오]

[사진출처=진르터우탸오]

올해 9월. 한 시민이 라오쯔하오 중 하나인 거우부리(狗不理) 만두를 먹고 "맛없고 비싸다"라는 돌직구 영상을 올린 것이다.

문제는 거우부리의 대처였다. '명예훼손'이라며 역으로 이 시민을 고소한 것이다. 어쩌면 조용히 덮어질 수 있었던 사건은 중국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돼버렸다. 사람들은 "라오쯔하오들이 시대 변화에 적응을 못 하고, 아직도 옛 전통을 고집한다."라며 비판 일색이었다.

[사진출처=진르터우탸오]

[사진출처=진르터우탸오]

시대적 변화 맞는 전통, 문제는 선택이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라오쯔하오들의 엉덩이는 무겁기만 했다. 수백 년 시간으로 빚어낸 '황금 엉덩이' 때문이다. 오래된 것은 금이라는 격언은 매번 맞는 말은 아닌 듯했다. 사람들은 라오쯔하오에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논란의 거우부리에 대한 사람들의 평점. 3점대로 비교적 낮은 편이다. [사진출처=다중뎬핑(大众点评)]

논란의 거우부리에 대한 사람들의 평점. 3점대로 비교적 낮은 편이다. [사진출처=다중뎬핑(大众点评)]

결국 '큰 형님'이 가장 먼저 엉덩이를 뗐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라오쯔하오의 대표 격의동인당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황제의 약방'에서 커피 향 맡다. 

동인당은 '한약 커피'를 콘셉트로 '동인당 카페'를 차렸다. 그런데 이 콘셉트가 꽤 먹혀들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에서는 “동인당이 커피를 판다고? 신선한데!”와 같은 반응과 더불어, SNS 핫이슈로 이 카페가 떠오르곤 했다.

[사진출처=진르터우탸오]

[사진출처=진르터우탸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카페가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라는 것이다. SNS에서 젊고 트렌디한 감성을 제대로 저격했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매장 분위기와 재치 있는 카피 라이팅에 중국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시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수립한 동인당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사진출처=웨이보 캡처]

[사진출처=웨이보 캡처]

때마침 ‘애국 소비’ 바람도 분다.

타이밍도 절묘했다. Z세대 젊은이들 중심으로 '애국 소비' 트렌드가 떠오르고 있는 요즘이다. 매장을 가득 채우는 손님 대부분이 젊은 층이라는 이 카페. 동인당이 트렌드의 등에 올라타 다시 한번 날개를 달게 될지 사람들은 주목하고 있다.

[사진출처=진르터우탸오]

[사진출처=진르터우탸오]

유구한 역사로 라오쯔하오계의 '큰 형님'격이었던 동인당의 새로운 변화가 다른 라오쯔하오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이 역시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차이나랩 허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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