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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손녀와 동문되고 싶다”…70대 대학원생 할머니가 장학금 내놓은 사연

중앙일보

입력

늦깎이 대학원생 방경자 할머니. [사진 부산대]

늦깎이 대학원생 방경자 할머니. [사진 부산대]

“태어날 때 가난해서 공부를 못 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공부하지 않는 것은 본인 책임이다.”

부산대 경제통상대학원 방경자 할머니 #21일 부산대에 장학금 1000만원 전달

 70세에 부산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해 공부하면서 후배를 위해 장학금 1000만원을 내놓은 방경자(71)씨의 생각이다. 방 할머니는 21일 오전 부산대 총장실에서 차정인 총장에게 장학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

 방 할머니는 중학교 졸업 후 형편이 어려워 학업의 꿈을 이어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배움에 대한 열망은 세월이 흐르고 결혼 뒤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마음속에서 되살아났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과 상의 끝에 결국 60세가 넘어 부산 예원여고에 들어갔다. 여고 졸업 뒤 내친김에 부산 신라대에 진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방 할머니는 대학 재학 중 아동보육교사·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아동상담사와 같은 자격증을 따고 컴퓨터와 한자·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대학 재학 중 1000시간 이상 자원봉사활동도 했다.

21일 장학금 전달식 뒤 기념촬영을 한 차정인 부산대 총장과 방경자 할머니. [사진 부산대]

21일 장학금 전달식 뒤 기념촬영을 한 차정인 부산대 총장과 방경자 할머니. [사진 부산대]

 이어 2019년 부산대 대학원 석사과정인 경제통상대학원 글로벌정책전공에 입학했다. 야간 과정인 경제통상대학원은 5학기 과정 뒤 논문을 써서 통과해야 정식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방 할머니는 “잘 자라줘 고마운 손자·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할머니가 되고 싶고, 늘 배우는 자세로 면학 정진하며 작은 것도 나누고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대학원에까지 진학했다”고 말했다.

 대학원 졸업까지 한 학기만을 남겨 놓은 방 할머니는 부산대를 졸업하기 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남편과 의논해 후배를 위한 장학금을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부부가 검소한 생활로 어렵게 모은 돈이라고 한다.

 방 할머니는 석사학위를 딴 뒤 박사학위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아직 진로를 정하지는 않았다. 방 할머니는 “늦게 시작한 배움의 길이 쉽지 않았지만, 용기와 희망을 준 학우와 교수, 변함없이 지원하고 응원해준 남편에게 졸업장을 바치고 싶다. 손자·손녀들이 부산대에 입학해 ‘동문’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차 총장은 “‘배움에 끝이 없다’는 방 할머니의 끝없는 열정과 나눔 정신이 후배 대학생들에게 귀감이 된다”며 “기탁해주신 장학금을 어려운 여건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위해 쓰겠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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