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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법 앞에 불평등’ 증명한 이용구 차관 폭행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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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헌법 11조에 이렇게 쓰여 있다. 변호사라서, 전직 고위 관료라서, 권력을 가진 이라서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그곳은 평등한 나라가 아니다. 법치국가도 아니다. 특정 집단의 면책특권이 인정되는, 누군가는 ‘더 평등한’ 계급사회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은 지금 이 나라가 그런 사회로 되돌아가는 길목의 초입에 다다랐음을 증명한다. 이 차관은 기사의 멱살을 잡아 흔드는 폭행을 하고도 경찰에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경찰은 택시기사에게 폭언을 하며 동전을 던진 30대 남성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영장은 기각됐지만 법원은 1심 선고 때 그를 법정구속했다. 택시기사에 대한 폭행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에 따라 처벌하게 돼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멱살을 잡는 폭력을 가해도 아무 일이 없었고, 어떤 이는 욕설과 동전 던지기로 교도소에 갔다. 이것이 특권층과 보통 사람에 대한 법 앞의 불평등이 아니면 무엇인가.

경찰은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한 상황이라 운행 중이라고 볼 수 없어 특가법이 아니라 일반 형법을 의율했고, 형법상 폭행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요구하지 않으면 죄를 묻지 않기 때문에 내사 종결 처분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행법에는 엄연히 승하차를 위한 정차도 운행 중으로 간주한다고 적혀 있다. 법이 사람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면 그것은 계급사회의 보호막에 불과하다.

경찰은 피해자를 불러 조사했지만 가해자인 이 차관(사건 발생 때는 전직 법무부 법무실장)에 대한 대면조사는 하지 않았다. 입건을 하지 않고 사건을 덮어 버렸다. 그 바람에 검찰에는 보고도 되지 않았다. 일반 시민이 같은 사건의 가해자였어도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을까. 사소한 시빗거리 때문에라도 경찰서에 가 본 사람은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담당 경찰관이 자의적으로 그렇게 처분한 것인지, 아니면 윗선의 지시를 받고 이행한 것인지, 경찰 밖의 어디선가 모종의 조처를 한 것인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시민단체 고발로 이 사건을 맡게 된 검찰이 사건 축소·은폐 여부를 가려내야 한다. 이 차관의 폭행에 대한 합당한 처벌도 있어야 한다. 검찰마저 대충 덮으면 법 앞에 평등이라는 소시민의 상식은 기댈 곳이 없게 된다. 사건이 이성윤 검사장이 있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크기에 걱정하는 목소리가 벌써 나온다. 검사들에게 권력이 아니라 법에 충성할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