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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북전단금지법으로 한·미 동맹 균열 생겨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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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의 내년 1월 취임을 앞두고 한·미 동맹의 첫 쟁점이 될 전망이다. 미국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차원에서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언론·출판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입법도 금지하고 있다.

미 의회, 내년 초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 추진 #바이든 신행정부 시작부터 한국과 갈등 우려

미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제리 코넬리(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해 비판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코넬리 의원은 미 의회 지한파 의원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성명에서 “한국 국회가 남북한 접경지역과 중국 등 제3국을 통해 인쇄물과 보조 저장장치, 돈, 기타 물품을 북한에 보내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한 것을 우려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수정을 촉구했다.

여당이 지난 14일 야당의 반대에도 강행 처리한 이 법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에 대한 확성기방송, 시각 매개물(전광판), 전단 살포를 금지하고 있다. 이 법은 또 북한에 쌀과 초코파이를 보내는 것을 막는 반인권적 내용도 담고 있다. 접경지역 우리 주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협을 준다는 게 입법 취지다. 그러나 과거 정부에선 대북전단과 관련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금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접경지역 주민에 대한 북한의 위협이 있을 때만 대북전단 살포를 일부 제한했다.

비판은 코넬리 의원뿐이 아니다. 미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는 대북전단금지법에 관한 청문회를 내년 초 열 예정이다.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은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바이든 신행정부와 갈등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와 같은 분위기를 한국 측에 전달했지만 정부는 아예 귀를 닫고 있다. 지난 18일엔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강창일 주일대사 내정자에게, 지난 8일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미 정부의 우려를 우리 측에 전달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결과적으로 미 의회는 물론, 행정부와 언론까지 한국을 비정상적인 국가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바이든 신행정부는 대북전단금지법을 적당히 넘기지 않을 것이다. 한·미 갈등이 불을 보듯 하다. 그런데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16일 미 CNN과의 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외교부 장관이 우리 헌법에도 보장돼 있는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듯 발언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자칫 준수할 의무가 있는 국제규약을 위반하는 국가, 반인권적인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낙인찍힐 우려도 있다. 북한과 코드를 맞추는 데 열중하다가 바이든 행정부 초반부터 한·미 동맹에 균열을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