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서 발로 뛰며 일 배웠더니, 장애인 취업률 1.5배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정신장애인인 정남일씨가 하남시 덕풍동에 있는 가락공판장 미사점 매장에서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사진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신장애인인 정남일씨가 하남시 덕풍동에 있는 가락공판장 미사점 매장에서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사진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신장애가 있는 정남일(42)씨는 1998년 고등학교 졸업 후 지난해 4월까지 이삿짐센터와 세차장 등 7군데 직장에서 일했다. 21년간 한 회사에서 평균 3년6개월가량 근무한 셈이다. 대개는 권고사직 형태로 회사를 그만둬야 했는데, 의사소통이 어렵고 직무적응이 떨어진다는 게 그 이유였다.

재활상담사와 맞춤 직업훈련 #장애인개발원 “40% 취업 목표”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정식 근무 중인 새 직장인 가락공판장 미사점은 예전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이곳에서 ‘슈퍼맨’으로 불린다. 손님이든 직원이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면 정씨가 적극 나서면서 생긴 별명이다. 정씨는 “여기서 상품을 진열하고, 창고 정리하는 일이 적성에 잘 맞는다”며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만큼 오랫동안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씨는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지원하는 ‘현장 중심 직업훈련(퍼스트잡·First Job)’을 통해 새 직장에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었다. 퍼스트잡은 장애 청소년과 미취업 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실제 근무하는 사업체 현장에서 전문가(훈련지원인)를 배치해 직무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미국의 발달장애인 구직 제도인 ‘프로젝트 서치’를 벤치마킹해 2016년 국내에 도입했다. 복지시설이나 교육기관이 아닌 현장에서 직무 교육이 원스톱으로 이뤄져 업무 적응이 비교적 빠르다.

하남시장애인복지관이 정씨와 면담을 통해 적합한 직무를 조언하고, 현장 훈련을 지원했다. 재활상담사가 동행해 매장에서 3개월간 상품 진열, 재고관리 교육을 지원했다. 백미라 하남복지관 직업재활팀장은 “포장지의 앞면 그림과 색깔로 상품을 암기할 수 있도록 하자 (정씨의) 업무 능률이 올랐다”며 “이런 식으로 훈련생에게 가장 적합한 직무 요령을 찾는 맞춤형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까지 퍼스트잡에 참여한 훈련생 1080명 가운데 356명(33%)이 취업에 성공했다. 중증장애인 취업률이 20.9%라는 것을 고려하면 1.5배쯤 되는 수치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퍼스트잡 프로그램을 내년부터 전국 단위로 확대한다. 정애진 장애인개발원 직업재활팀장은 “올해는 중증장애인 훈련생 960명 중 40% 이상 취업이 목표”라며 “더 많은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좋은 훈련을 받고 자립 기반을 갖추도록 서비스 접근성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재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