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사스 烈士'

중앙일보

입력

'사스와의 전쟁'이 한창인 홍콩인들이 또 한번 비보(悲報)에 몸을 떨었다.

주룽(九龍)반도 서쪽의 툰먼(屯門) 종합병원 사스 병동에서 활약한 여의사 셰완원(謝婉雯.35)이 13일 새벽 끝내 눈을 감은 것이다. 그녀는 지난 3월 말 사스 환자의 목에 고무호스를 끼워주다 2차 감염이 돼 병마와 싸워왔다.

홍콩에서 사스에 희생된 의사는 그녀가 처음이 아니다. 개인병원의 50대 의사와 30대 후반의 남자 간호사가 그녀에 앞서 세상을 떴다. 사스에 걸린 의료진(3백74명) 가운데 10여명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謝의사의 죽음에 7백만 홍콩인이 애도하고 있다. 그녀가 의사로서 보여온 헌신과 용기 때문이다. 추도식장인 툰먼 병원의 지하강당은 조화(弔花)와 종이학, 하트 모양의 쪽지 편지로 뒤덮였다.

'당신은 사스 열사(烈士)' '홍콩인의 영원한 자랑'이라는 헌사가 줄을 이었다. 둥젠화(董建華)행정수반은 "홍콩은 영원히 그녀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실과 흉부내과를 지키며 "잠깐인 인생 뒤에 영원한 삶이 있다"고 되뇌던 그녀는 사스가 위력을 떨치자 사스 병동 근무를 자원했다. 응급실 근무 땐 촌각을 다투는 환자를 위해 직접 앰뷸런스에 타기도 했다.

몇년 전 그녀에게 치료를 받았던 허(何.56)모씨는 "중국 대륙에 갔다가 밤중에 호흡곤란 증세로 발을 굴렀을 때 謝의사가 증명서를 가져와 출입국 수속을 할 수 있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녀의 결혼 생활 역시 한편의 러브 스토리다. 명문대인 중원(中文)대 의학원을 졸업한 뒤 사귄 남편이 백혈병 환자임을 알고도 그녀는 2000년 말 결혼식을 올렸다.

의사였던 남편은 2년도 안돼 곁을 떠났다. 임종 직전엔 홀로 남은 모친을 걱정한 듯 친구들에게 "나 대신 엄마를 잘 위로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스가 기승을 부리는 중화권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사스를 피해 사표를 내고 잠적한 사례도 극소수 있지만 대부분 환자를 구하는 데 몸을 던지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사스 전선의 진정한 영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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