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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희의 나우 인 재팬

취임 100일 스가 ‘단명 정권’으로 끝나나…“코로나 잡아야 반전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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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가-스'입니다"

지난 11일, 일본의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평소 잘 하지 않던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함박웃음을 지으면서다.

[이영희의 나우 인 재팬] #내각 지지율 3개월만에 40%대로 하락 #긍정·부정 근접, 단명 정권과 추세 비슷 #"코로나 상황 개선없인 반등 힘들듯" #자민당 내에서도 "리더십 부족" 불만

'가-스'는 '스가'라는 본인의 성을 거꾸로 읽은 것으로, 인터넷 등에 떠도는 총리의 별명. 젊은 사람들이 많이 시청하는 방송인만큼 친근한 이미지로 어필해보려는 시도였다.

취임 3개월만에 지지율이 40%대로 떨어지며 위기를 맞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취임 3개월만에 지지율이 40%대로 떨어지며 위기를 맞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안 어울린다", "지금이 웃을 때인가"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이날은 일본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하루 확진자가 3000명에 육박하며, 정부가 고집스럽게 추진해온 여행장려책 '고 투 트래블(Go To Travel)'에 대한 비판이 최고조에 이른 때였다. 방송을 본 자민당의 한 간부도 "총리에게 위기감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16일 출범한 일본의 스가 내각이 집권 100일(25일)을 코앞에 두고 '승부의 시간'을 맞았다. 집권 초반기 쏟아지던 호감은 온데간데없고, '악재'는 이어진다. 일각에서는 "이대로라면 스가 정권은 단명(短命)으로 끝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근거는 지지율이다.

'지지하지 않는다'가 이렇게 높단 말인가"

'가-스' 발언 이틀 후인 13일, 스가 총리는 마이니치 신문이 공개한 정권 지지율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후 이렇게 말했다고 도쿄 신문이 전했다.

이 조사에서 스가 내각을 '지지한다'고 답한 비율은 40%, 출범 3개월 사이 같은 기관이 실시한 조사에서 지지율이 64%→57%→40%로 급락한 것이다. 반면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전달보다 13%포인트 뛴 49%에 달해, 내각에 대한 부정 여론이 처음으로 긍정을 넘어섰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내각제인 일본에서 지지율은 정권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 척도다. 대통령제에서는 지지율이 하락해도 대통령이 임기를 채울 수 있지만, 내각제의 총리는 다르다. 지지율이 급락해 정책을 추진할 동력이 사라지면 의회 해산을 통해 심판을 받게 된다. 그 분수령이 바로 '지지하지 않는다'가 '지지한다'를 넘어서는 시점이다.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 장기 집권한 내각은 2001년 4월부터 5년 5개월 이어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내각과 2012년 12월부터 7년 9개월 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2차 내각뿐이다.

그 사이에 있는 아베 1차 내각(2006.9~2007.9),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내각(2007.9~2008.8), 아소 다로(麻生太郞) 내각(2008.9~2009.9), 하토야마 이치로(鳩山由紀夫) 내각(2009.9~2010.6),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2010.6~2011.9),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2011.9~2012.12)은 모두 1년 안팎에서 막을 내렸다.

'장수 정권'과 '단명 정권'의 차이는 지지율 추이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공영방송 NHK 조사를 기준으로 했을 때, 고이즈미는 집권 직후 지지율이 81%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후 1년간 50~70%대를 유지했고, 이후 천천히 하락했다. 집권 1년째 '지지한다'가 43%, '지지하지 않는다'가 45%로 뒤집혔지만, 이후 지지율이 다시 반등해 임기가 끝날 때까지 40%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아베 2차 내각의 경우도 집권 첫 달 64%의 지지율로 시작해 2년 후까지 50% 내외의 높은 지지율을 이어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반면, 단명 내각의 경우 집권 당시엔 50~60%의 높은 지지율을 보였지만 3~6개월 사이 '지지하지 않는다'가 '지지한다'를 넘어서며 그래프가 'X자'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런 추세가 쭉 이어지면서 수개월 내 총선을 통해 총리가 교체되는 수순이다.

후쿠다 내각의 경우, 집권 초 58%의 내각 지지율로 시작됐으나 출범 3개월 만에 '지지하지 않는다'(44%)가 '지지한다'(43%)를 넘어서며 X자가 돼 말기에는 지지율이 20%까지 하락했다.

이런 추세로 봤을 때 스가 내각의 지지율 추이는 '위기 상황'이다. 마이니치 조사에선 이미 그래프가 X자에 도달했고, 14일 발표된 NHK 조사에서는 '지지한다'가 42%로 '지지하지 않는다(38%)'보다 높았지만 근소한 차이였다. 스가 내각이 아베 총리의 잔여임기를 채우는 '단명 정권'이 될 것인가, 조기 총선에서 승리해 '3년 더'를 노릴 수 있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변곡점에 선 셈이다.

일본 내에서는 벌써부터 비관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평론가 이즈미 히로시(泉宏)는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내년에도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면 새로운 총리 아래서 중의원 선거를 하자는 요구가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자민당 내에서도 '스가로 괜찮을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마이니치 신문 등에 따르면 "리더십이 부족하다", "소통 능력이 없다" 등 스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당내에서 높아지고 있다.

지난 16일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도쿄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6일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도쿄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위기에 몰린 스가 총리는 14일 연말연시 '고 투 트래블' 을 일시 중단한다는 결단을 내렸지만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도쿄의 한 소식통은 "내각 지지율 하락세에 비해 자민당 지지율은 크게 떨어지지 않아 정권 교체를 말하기엔 아직 이른 상황"이라면서도 "코로나19로 경제·외교 등의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여건이라 결국 감염 확산을 얼마나 빠른 시간 내 통제할 수 있는가가 정권의 명운을 결정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