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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대통령도 정보 기관도 봄부터 백신에 ‘올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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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호 05면

[SUNDAY 추적] 주요국은 코로나 백신 선점 레이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경내 아이젠하워 행정관 건물에서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경내 아이젠하워 행정관 건물에서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지난 8일 영국, 14일 미국과 캐나다에서 화이자 백신의 접종이 시작되면서 선구매 국가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백신은 누가 뭐래도 코로나 팬더믹을 하루라도 일찍 종식해 정상생활과 경제활동 재개를 이룰 수 있는 ‘게임 체인저’이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 차원 치밀한 전략 #미, 5월부터 ‘초광속 작전’ 돌입 #사우디, 5억 달러 백신개발 선투자 #선진국들 발 빠르게 선제 대응

미국의 경우 ‘통 큰 조기 연구·개발 투자’가 주효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은 누적 확진자가 150만명을 넘어선 지난 5월 15일 대응 프로젝트인 ‘워프 스피드 작전(Operation Warp Speed)’에 들어갔다. 스타트렉 같은 SF 드라마에서 나오는 초광속 항해 기술인 ‘워프’에서 따온 이름이다. 일찌감치 코로나 대응의 핵심을 백신으로 잡고 3억 명분을 2021년 1월까지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식품의약청(FDA), 국립보건원(NIH) 등 미 정부 조직과 민간 제약업체가 힘을 합쳐 백신을 개발하고, 국방부가 운반과 보관에 손을 보태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가 별것 아니다”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는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지만 백신 확보에는 누구보다 빨리 움직인 것이다.

사실 미 연방정부는 이 작전 시작 전부터 백신 개발에 거액을 지원했다. CNN에 따르면 3월 들어 신규 감염자 수가 하루 3만명을 넘어서자 미 연방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30일 민간 제약사인 존슨앤드존슨에 4억56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원 규모는 갈수록 늘어갔다. 4월 16일에는 모더나에 4억8300만 달러, 5월 21일에는 아스트라제네카에 12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백신 개발뿐 아니라 생산시설 확보에도 6억28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미국은 이미 지난 7월에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1억 회분, 8월엔 모더나와 2억 회분의 백신 구매 계약을 맺었다.

미국은 7월 들어 하루 확진자가 7만명을 넘어서자 3상 시험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화이자 백신은 4만명, 모더나의 백신은 3만명이 참여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백신 임상시험은 동물시험 이후 보통 3차에 걸쳐 이뤄진다. 1상은 소수(20~100명)의 건강한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실제 효과가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판단한다. 2상은 100~300명을 대상으로 적절한 투여량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판매 허가를 얻기 전 마지막 단계인 3상은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효능을 최종적으로 확인한다.

이번에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급된 화이자 백신의 경우 이미 지난 3월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계약을 맺고 백신 플랫폼을 공동으로 개발해 왔다. 독일 국제방송 DW는 “계약 체결 당시 전 세계의 코로나 확진자는 17만9000명이었고 사망자는 7000명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이같은 각국 정부와 기업의 노력을 통해 보통 8~10년이 걸리는 백신 개발을 코로나가 발생한 지 1년 안에 마무리했다. 이는 전문가들조차 예상치 못한 속도다. 실제로 지난 5월 유럽의약품청(EMA)은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따르면 백신이 1년 안에 준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효과도 기대 이상이다. 과학자들은 75% 이상의 효과를 가진 백신을 기대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도 “50~60% 정도의 효력만 있어도 쓸 만하다”고 언급했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3상 시험에서 90% 이상의 예방 효과를 보였다.

백신 개발이 속도를 내면서 이미 지난 여름쯤 경제적 여력이 있는 나라들은 발 빠르게 선구매를 통해 물량을 확보했다. 빈곤 해결과 공정 무역을 추구하는 국제기구인 옥스팜은 지난 8월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인 주요 백신 5개의 생산 능력은 59억 회분”이라며 “이 물량의 51% 정도가 미국·영국·유럽연합(EU)·호주·홍콩·마카오·일본·스위스·이스라엘 등 부유한 국가와 지역들이 선구매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8월 초 화이자 백신 1억2000만 회분을 계약했으며, EU는 8월 스웨덴·영국의 다국적 제약업체인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4억 회분을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DW는 전 세계에서 남은 백신 물량인 26억 회분은 방글라데시·중국·브라질·인도네시아·멕시코 등 중견 국가들이 서둘러 사들이거나 구매를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7일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접종을 시작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선제적 투자로 백신을 확보했다. 지난달 21일 압둘라 알라비아 인도주의 구호·원조 수석 고문은 “사우디는 5억 달러를 백신 개발에 투입했다”며 “이 중 2억 달러는 국제·지역 기구의 백신과 의약품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이런 식으로 확보한 백신을 이웃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바레인·오만에도 공급할 수 있도록 해 지역 백신 맹주를 노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가 주도적으로 방역물자에 이어 백신 확보에 나섰다. 현지 일간지 예루살렘포스트는 “지난 10월 27일 모사드가 해외에서 백신을 구해 국내에 들여왔다”고 보도했다. 정보망을 동원해 임상시험 상황을 입수하고, 쓸 만한 백신을 우선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전통명절인 하누카(올해는 12월 10~18일)가 끝난 직후인 20일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채인택 국제전문 기자, 김창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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