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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 불신 커져, 투명한 접종 로드맵 빨리 짜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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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호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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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脫眞實, post-truth)의 시대에 찾아온 세기적(世紀的) 역병이 세모(歲暮)를 앞두고 본격적인 대유행을 보이고 있다. 지구촌 살이 1년을 넘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걸어온 길은 팬데믹 초기부터 예측된 바다. 대한민국 현황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지난 12일,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넘기자 정부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긴급 주재했다(확진자가 세계 2위를 기록했던 2월 23일 이후 두 번째다).

워싱턴대 의대, 한국 확산 예측 #내년 3월 하루 4981명 확진 전망 #“RNA백신 부작용 탓 계약 안 해” #정부 불성실한 해명 때문에 불신 #고위 관료부터 접종, 안심시켜야

국내 확산세 예측됐던 상황

그런데 지난 12일 발생한 확진자 1030명은 이미 미국 워싱턴대 의대 보건계량분석연구소(IHME)가 예측했던 수치(966명, 오차 범위 472~2238명)다. 이들은 국내 확진자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해 석 달 후인 내년 3월 18일에는 4981명(오차 범위 785~2만3068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이 연구소는 지난 9월 초, 미국 상황에 대해 12월에는 하루 3000명씩 코로나19로 사망할 것으로 예상했고 이는 현실로 나타났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생명체의 속성을 다루는 의과학 분야는 이처럼 오차범위를 제시하면서 향후 상황을 예측하는 경우가 많다. 팬데믹 극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과학의 힘을 빌려 방역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이런 측면에서 확진자 급증보다 더 놀라운 점은 마치 K방역이 12월에 돌발 변수를 맞아 뜻밖의 타격을 입은 듯 전전긍긍하는 방역 당국의 태도다.

IHME처럼 전문가들이 선제적으로 코로나19 여정을 국가별로 제시하는 이유는 지구촌 각지의 정부가 다소 긴 호흡으로 적기에, 자국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팬데믹 시기라고 해서 모든 사회가 똑같이 문을 걸어잠근 채 살 수는 없는 데다 나라마다 사회문화적 차이도 커서 방역 방법도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마스크 착용과 확진자 추적 문제만 봐도 환자 발생·사망자 수 감소를 우선으로 여기는 아시아인과 인권이나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서양인 간의 간극은 크다.

방역이 가장 어려운 지점은 경제 상황과 적절한 줄타기를 하면서 사회 전반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일이다. 흔히 경제와 방역 사이의 균형을 이야기하면 “돈이 사람 목숨보다 가치 있느냐?”라는 반박을 쉽게 한다. 하지만 생명 수호 차원에서도 경제적인 상황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 올해 국내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자는 296명으로 작년보다 43%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과 우울증(코로나 블루)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난 16일까지 20대 감염자 7953명 중 사망자가 전무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청년들에게는 코로나19 감염보다 방역의 그늘로 초래된 위험이 훨씬 더 심각했던 셈이다.

‘횡액과 횡재는 한 쌍’이라던 법정스님의 법문처럼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불행 속에서 인류는 94~95%의 효과를 보이는 혁명적인 mRNA(전령 리보핵산) 백신을 탄생시켰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내년 하반기가 돼야 이 첨단 백신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백신 선구매 시기를 놓친 탓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불성실한 해명이 초래한 국민적 불신이다. 실제로 방역 당국은 “RNA백신은 접종 부작용이 걱정돼 계약을 안 했다”고 해명하더니, 내년 상반기 도입이 확정된 백신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이 없어도 국내 접종 절차를 밟겠다”는 희한한 발표를 했다.

사실 정부 구매가 확정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착한 가격(3300~4500원)·냉장보관 등 장점이 크다. 하지만 임상시험 도중 접종자 중에서 횡단성 척수염이 발생한 데다 국가별로 백신의 용량, 두 번째 접종 시기 등이 달라 미국 FDA는 3상 시험이 종결된 이후에야 승인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은 이 모든 사실을 SNS를 통해 의료인·비의료인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시대다.

사실 코로나19 백신은 인류가 최초로 단기간에 개발한 결과물이라 부작용을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를 불식시키고자 미국의 오바마·부시·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 셋은 접종 상황을 공개하겠다고 나섰고, 94세 영국 여왕도 100세 남편과 함께 맞겠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내년 상반기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도입되면 먼저 청와대·보건복지부 등 고위 관료들부터 공개적으로 접종해서 백신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덜어줘야 할 것 같다. 드물게 나타나는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감염자 사망률이 높은 고령자와 기저 질환자는 신속한 접종이 권장되기 때문이다.

미·유럽은 접종 로드맵 완성

접종과 관련된 모든 절차를 담은 기획안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이미 10월에 백신 접종 로드맵이 완성됐으며, 유럽 각국도 국가별 계획이 섰다. 예컨대 의료진 감염이 심각한 불가리아는 의료진부터, 독일은 80세 이상부터 매주 50만명씩 접종해 입원 환자와 사망자를 줄일 계획이다.

성공적인 방역은 의과학·경제·사회문화적 상황 등이 시시각각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혹여 거짓이나 정치적 이익이 개입할 경우, 사회적 불신은 커지고 전염병 유행은 악화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매사에 투명한 설명과 정책으로 사회적 연대와 신뢰를 공고히 만들어 가야 한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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