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백신 부작용·예산 걱정해 ‘돌다리’만 두드려

중앙선데이

입력 2020.12.19 00:02

업데이트 2020.12.1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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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호 04면

[SUNDAY 추적] 코로나 백신 확보 왜 늦어졌나

혹시나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다. 정부가 17일 예정에 없던 백신 도입 관련 브리핑을 18일 오전 하겠다고 기자단에게 공지했을 때 화이자·얀센·모더나 백신 도입 시기나 단계별 물량 등이 공개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화이자·얀센 백신은 이달 내에, 모더나는 내년 1월 계약 체결을 목표로 협의 중이라는 게 핵심이었다. 이달 8일 ‘4400만명 도입 계획’을 발표한 이후 간간이 내놨던 것과 차이 없었다. 18일 브리핑에선 한국이 ‘백신 후진국’을 모면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K방역 믿고 느긋한 행보
안전성 우려에 선구매 주저
관료들의 보신주의 걸림돌
거리두기 효과 과신 측면도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구해야”

정부는 4월 17일 치료제·백신 개발 범정부 실무추진단 회의를 열었다. 미국이 5월 중순 ‘초고속 작전팀’을 출범시킨 것에 비하면 4월 실무추진단 구성이 늦지는 않았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백신의 필요성을 일찍 인지한 듯 하지만 정작 관심은 국내 백신 개발이었다. 게다가 5, 6월 ‘K방역’ 홍보에 바빴다. 세계와 공유하고, 중남미까지 수출하고, 생활방역을 알린다고 홍보했다. 관련 정부 부처가 나서 세계 표준 길잡이를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정부가 5월에 백신 태스크 포스(TF)를 만들었지만 당시 하루 신규환자수가 50명 안팎으로 안정세를 보였기 때문에 느긋했다”며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다급했던 미국·영국만큼 절실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후 8월 들어 신규환자수가 100명을 넘어서자 아스트라제네카(7월)·모더나(8월)·화이자(9월)·존슨앤존슨-얀센(10월) 등과 차례로 협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계약 협상은 3차 확산이 본격화된 11월 말에야 시작됐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00만명분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 백신도 내년 2월 이후에야 공급될 예정이다. 이번 겨울 내내 백신없이 코로나와 싸워야할 판이다.

정부가 선구매를 주저한 표면적 이유는 안전성 문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작용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근 공개된 화이자의 3상 시험 결과에 따르면 백신을 맞은 1만8000명 가운데 9명이 코로나에 감염됐다. 위약을 접종한 대조군 1만8000명 가운데 감염자는 169명이었다. 백신이 감염자를 94.6% 줄인 것이다. 사망자는 백신 접종자 가운데서 2명, 플라시보 그룹에서 4명이 발생했다.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모든 백신은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부작용을 감안해도 이득이 더 큰 집단이 있다. 65세 이상 노인과 기저질환(지병)이 있는 사람이 그렇다”고 말했다.

정부가 거리두기 효과를 과신한 측면도 있다. 상반기 내내 환자 발생이 많지 않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선구매 협상에 뛰어든 8월만 해도 거리 두기를 올려 치솟던 확진자를 막았다. 그런 방법으로 겨울을 넘길 수 있다고 쉽게 판단한 것이다.

예산상의 문제도 있다. 백신 도입에 관여한 한 전문가는 “가격과 임상 성공 여부 등 여러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차근차근 (협상을 진행)한 것 같다”면서도 “우리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따져온 것이다. 미국은 리스크를 짊어지고 모더나에 1조2000억원의 연구개발(R&D) 자금을 주고 3억 도즈를 선구매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우리가 그렇게 했으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감옥 가야 하지 않았겠느냐. 그럴 만큼 돈이 있는 나라도 아니고 미국·영국처럼 하기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정말 행정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백신을 과도하게 비축했을 때 그것을 몇 개월 이내에 폐기해야 되는 문제가 생기는데 그에 따르는 사후적인 책임 문제도 사실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사후 책임을 두려워한 관료들의 보신주의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한 보건의료 분야 원로 교수는 “정치가가 나서 ‘책임은 내가 질테니 공무원이 나서라’고 했어야 하는데 대통령도 총리도 그러질 않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일본은 대통령과 총리가 나섰다.

백신의 필요성이 확인된 이후에도 정부는 돌다리만 두드릴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백신이 유일한 게임체인저(판도를 뒤집어놓는 요소)”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구해와야 하는 상황이라면 협상 전문가, 네트워크 좋은 사람들로 팀을 꾸리고 전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협상 조건은 나쁠 수밖에 없으니 과정상 절차 준수나 금액 손해 등의 법적·행정적 문제에서 보호해줘야 소신을 갖고 백신을 구해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야 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방역 전문가는 “복지부만 질책할 것이 아니라 문 대통령이 백신 확보 계획을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하고, 먼저 백신을 맞아 안전성 논란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김창우·황수연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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