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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 34조개 세포 협력 척척, 인간은 딴판 ‘아이러니’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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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호 15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삽화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삽화

한 생물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생식세포·체세포 등 전문·분업화 #단백질 조절하고 노폐물 제거 등 #리더 없이 질서정연하게 제역할 #인간은 몇명만 모여도 삐걱거려 #건강한 조직 문화, 세포에 해답

“우리 몸은 뇌세포와 간세포 같은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혹시 세포가 된다면 어떤 세포가 되고 싶습니까?”

많은 학생이 뇌세포라고 답했다.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교수가 말했다.

“나는 생식세포가 되고 싶어요.”

생식세포는 난자나 정자를 만드는 세포다. 뜻밖의 ‘야한’ 단어에 학생들이 슬며시 웃자 교수가 덧붙였다.

“다들 이상한 걸 생각하는 것 같은데, 생식세포야 말로 영원히 사는 세포거든요.”

농담이 아니다. 우리 몸은 260여 가지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좀 더 크게 분류하면 딱 두 가지 세포로 나뉜다. 유전자를 후세로 전하는 생식세포와 몸을 만드는 체세포다. 체세포는 나와 함께 살다 함께 죽지만 생식세포는 다르다. 생식세포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인 발생 초기에 일찌감치 생겨나는데, 후손에게 잘 전해지기만 한다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몸에도 있는 생식세포는 저 먼 시대에서 대대손손 전해지고 있는, 꺼지지 않는 횃불과 같은 영원한 생명이다.

적혈구가 24조개로 전체의 71%

우리 몸에 이런 세포가 얼마나 있을까? 무려 34조개나 있다. 헤아릴 수 없다는 우주의 별보다 많다. 각각의 세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서 일렬로 다섯 개 정도를 세워야 머리카락 한 올 만큼의 폭이 될 정도지만 이 작은 세포들이 모여 어마어마한 일을 해낸다. 우리 몸인데도 우리가 잘 모르는 어떤 원리에 따라 질서정연하고 빈틈없이 협력해 우리의 살아있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많은 세포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일하려면 누군가 리드하고 지휘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존재가 없는데도 말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세포들의 철저한 전문화·분업화에 그 비결이 있다. 예를 들어 각 세포의 핵 속 DNA에는 우리 몸의 설계도 전부가 들어있지만 근육세포는 근육만 만들고 간세포는 간만 만든다. 생식세포는 생식(후손 만들기)만 전담한다. 이뿐인가? 경찰이나 군대 역할을 하는 백혈구는 자신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몸을 던져 세균과 싸운다. 일반세포들도 대개 자기 역할이 끝나면 스스로 소멸한다. 전체를 위한 아름다운 희생을 모두 스스로, 알아서 한다. 물론 말썽꾼이 없지는 않다. 제멋대로 활동하거나 죽어야 하는데도 죽지 않은 암세포들인데, 자기 생존만 추구하는 암세포들은 다행히 많지 않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건 세포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단백질은 집 지을 때 필요한 벽돌이나 시멘트 같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기본 성분인데 얼핏 생각하면 유전 정보를 갖고 있는 유전자(DNA)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이 중요한 성분을 만들어낼 것 같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DNA는 핵 속에 가만히 있고 각각의 공정을 담당하는 ‘실행 전문가’들이 각 분야를 담당한다. DNA가 갖고 있는 설계도(정보) 중 필요한 부분을 복사해서 가지고 나온 리보핵산(RNA)이 단백질을 만드는 재료(아미노산)를 가져오면 제작 전문가(리보솜)가 만드는 식이다. 최고경영자가 해야 할 일을 정하면 분야별 전문가들이 실행하는 것과 같은 구조다.

이뿐인가? 세포마다 필요한 단백질을 언제 얼마나 만들 것인지를 제어하는 전문가(조절단백질)도 있고, 에너지(ATP) 생산 전문가(미토콘드리아)도 있으며 쓸모 없어지거나 해가 되는 노폐물과 이물질을 꿀꺽 삼켜 세포 속을 깨끗이 청소하는 ‘재활용 처리’ 전문가(리소좀)도 있다. 이 흥미로운 뒤처리 전문가가 없으면 세포는 쉽게 망가지고 노쇠해질 뿐만 아니라 주변 세포들에까지 악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는 게 34조개의 세포가 이렇게 쉬지 않고 자기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덕분이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되면 어떻게 해야 건강한 조직을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답도 세포에게서 얻을 수 있다. 34조개의 세포 중 어떤 세포가 가장 많은가 하는 것에 답이 있다. 가장 필요한 세포가 가장 많을 테니 말이다. 어떤 세포가 가장 많을까?

에너지 가장 많이 쓰는 건 뇌세포

이번에야말로 뇌세포가 아닐까 싶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도 아니다. 우리 몸 곳곳에 산소와 영양분을 실어 나르는 적혈구가 가장 많다. 전체의 71%인 24조개나 된다. 두 번째로 많은 게 혈관을 수리하고 피를 응고시키는 혈소판(5조개)이고, 세 번째가 피를 만드는 골수세포(5000억개)다. 온몸 곳곳에 혈액(영양분+산소)을 흐르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뇌세포는 1000억개쯤 되고, 백혈구는 250억개쯤 되는데, 뇌세포가 1등인 분야도 있긴 있다.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20% 이상) 쓴다. 골치가 아프면 쉽게 피곤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참 알 수 없는 건 우리를 이루는 세포들이 이렇듯 이끄는 존재가 없는데도 조직적으로 조화롭게 움직여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데, 정작 이런 세포들의 집합체인 우리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몇 명만 모여도 삐걱거리기 일쑤다. 34조개나 되는 세포들이 이런 협력을 만들어내는 것도 놀랍지만 이런 세포들로 이루어진 우리들이 세포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도 놀랍다. 참 알다가도 모를 존재가 인간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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