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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조상, 폐 혁신 통해 ‘저산소 시대’ 지구 지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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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호 16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일러스트=김이랑 kim.yirang@joins.com

일러스트=김이랑 kim.yirang@joins.com

공룡, 하면 우리는 거대한 덩치를 떠올린다. 실제로 가끔씩 발굴되는 화석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가장 컸다는 아르젠티노사우루스는 길이가 35m나 되고 몸무게가 70t이었다. 35m면 시내버스(11m) 세 대보다 길다. 가장 많이 알려진 티라노사우루스는 민첩해야 하는 사냥꾼이었는데도 12m의 길이에 몸무게가 7t이었다. 이 덩치로 재빠르게 뛰었다는 뜻이다(시내버스가 이리저리 뛰어다닌다고 상상해보라). 생명체들은 대체로 덩치를 선호하지만 원한다고 커질 수 있는 건 아니다. 환경과 능력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공룡은 어떻게 이런 거대한 덩치를 가질 수 있었을까?

화산 폭발, 탄소·메탄 늘어 대멸종 #공기주머니 하나 더 만들어 번성 #1억5000만년 동안 전성기 누려 #코로나 시대 위기를 기회로 활용 #기본기 축적 통해 변화 대비해야

공룡 폐, 인간보다 세 배 높은 효율

지금으로부터 2억5000여 만년 전 어느날 지구를 흔드는 대격변이 시작됐다. 지금의 시베리아 지역이 흔들리고 갈라지면서 화산이 터져올랐다. 단순한 폭발이 아니었다. 분출한 용암이 무려 2000m 이상 솟구쳐 올랐다. 일반적인 화산 폭발보다 열배나 되는 높이다. 이런 폭발이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갈라진 지표면 사이로 시뻘건 용암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연구에 따르면 균열의 폭과 길이가 각각 100㎞와 1500㎞나 됐으니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48시간 만에 한반도 만한 넓이가 용암에 잠길 정도였다. 지구 맨틀 아래에 있던 용승류가 솟아오르면서 일어난 거대한 분출이었다.

일회성이 아니었다. 10년 후에도 지구 전체에 독성 가스가 가득했고 용암이 15만년 후까지 흘러나왔을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대량의 이산화탄소였다. 급증한 이산화탄소가 지구를 달구면서 심해 해저에 잠자고 있던 ‘괴물’을 깨웠던 것이다.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듯하는 거품을 통해 대기 중으로 나온 괴물은 메탄이었다. 이산화탄소보다 온실 효과를 20배 이상 높이는 메탄은 뜨거운 지구를 만들었고, 이것이 다시 메탄을 녹이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다. 이런 현상이 50만년 동안이나 이어지다 보니 산소가 급감, 당시 생명체의 95%가 사라졌다. 120만년이 지난 후에서야 생명체들이 다시 활동할 수 있었던 페름기 대멸종이었다.

생명체들이 살아가기 힘든 저산소 시대는 이후로도 1억년 넘게 이어졌다. 5000만년쯤 후 다시 한 번 대멸종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페름기 대멸종 이전의 산소가 풍부했던 좋은 시대는 그렇게 영영 가버렸다. 그러면 이 동안 지구는 죽음의 행성이 되었을까?

아니었다. 생명은 약한 것 같지만 보기보다 질기고 강인하다. 이런 시대 환경에 맞는 능력을 개발한 생명체가 나타났던 것이다. 공룡의 조상이었다. 이들은 여러 능력을 개발했는데, 특히 이전의 원시적인 폐를 혁신한, 저산소 시대에 걸맞은 폐가 독보적이었다. 도마뱀처럼 옆구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그래서 걸으면 몸이 오른쪽 왼쪽으로 왔다갔다 하는, 폐활량이 적을 수밖에 없는 방식 대신 공기주머니를 하나 더 만들어 효율을 높인 폐였다. 공룡의 후예라고 하는 새들이 이런 호흡기를 갖고 있는데, 공기주머니가 두 개이면 적은 산소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폐가 하나인 우리는 숨을 들이쉰 다음, 이걸 내뱉어야 새로운 공기를 흡입할 수 있지만 이들은 다르다. 들이마신 공기를 두 번째 공기주머니로 보낼 수 있어 새로운 공기를 연이어 들이마실 수 있다. 우리의 폐보다 에너지 효율이 세 배나 높은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공룡은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더 뛰어난 존재가 없었기에 능력껏 덩치를 키울 수 있었다. 시대에 맞는 능력을 갖춘 존재에게 세상은 풍요로운 곳이 되는 게 이치다.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서 식물이 지금보다 두 배나 더 크게, 그리고 잘 자란 덕분에 덩치를 키워도 배를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가혹한 시대를 기회로 만들었다. 그래서 대멸종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하는 말이 있다. 대멸종은 누군가에는 끝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작이라고. 공룡은 자신들이 만든 이 전성시대를 무려 1억5000만년 동안이나 누렸다.

코로나 이후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

공룡이 생각난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이런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가능성이 커서다. 달라진 시대에 맞는 능력을 개발한 새로운 주인공이 나타날 것이다. 누가 이 영광을 맞이할까?

얼마 전 자문을 하는 기업의 CEO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또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걱정하고 있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르는 까닭이다. 우리는 두 가지는 확실하다고 봤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과 지금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결론(해야 할 일)이 자연스럽게 잡혔다.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것(전자)에 연연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후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변화를 해야 한다면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다. 모두가 절박함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뭘 할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적인 건 충실한 기본기 축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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