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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진단 객관적 잣대 나왔다

중앙일보

입력

치매는 건강과 생명은 물론 영혼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암보다 두려운 질환이다. 그러나 무서운 치매도 일찍 발견하면 약물치료와 인지(認知)치료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악화를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치매를 객관적으로 진단해낼 수 있는 의학적 수단이 없었다는 것. 그러나 서울대 의대 정신과 우종인 교수 등 12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최근 국제적인 치매 진단 평가 도구인 CERAD의 한국어판(핵심 평가도구 13가지)을 내놓음으로써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이 평가도구는 미국 내 주요 알츠하이머병 연구센터들의 연구 협의체인 CERAD가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의 지원을 받아 1989년 개발했다.

치매를 조기발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상적인 건망증과 구별하는 것이다. 뭔가를 꺼내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뭘 꺼내려고 했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곰곰 생각해보면 한참 만에 "맞아, 과일을 꺼내려고 했었지"하고 잠시 잊었던 기억이 돌아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TV 드라마를 열심히 봤는데, 오늘 주인공이 무슨 말을 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주인공 얼굴만 가물가물하다.

옆에서 누가 오늘 드라마에서 이런저런 부분이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서야 "맞아, 그런 내용이 있었지"라며 맞장구를 치게 된다.

여기까진 정상적인 건망증이다.

그렇다면 건망증이 치매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건망증에서는 자신이 겪은 일의 내용을 잠시 또는 부분적으로 잊어버리지만, 치매에서는 영원히, 그리고 통째로 잊어버리게 된다.

치매의 경우 누가 옆에서 힌트를 주어도 잊어버린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는 반면, 건망증은 힌트를 주면 마치 전등불이 켜지는 것처럼 기억이 되살아난다. 물론 내용 중 일부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대체적인 내용을 기억할 수 있다면 치매일 가능성은 작다.

잊어버리는 대상도 중요하다. 망각의 대상이 일상적으로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면 치매일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식탁 위의 반찬을 냉장고에 넣는 것을 깜박했다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건망증에 가깝다. 그러나 손에 든 구두를 냉장고에 넣고 까맣게 잊고 있다면 치매일 가능성이 크다.

방금 했던 일이 아니라 가족의 얼굴이나 자신의 생일 등 지난 수십년 동안 쉽게 기억했던 사항이 가물가물한다면 치매가 확실하다. 한국어판 치매 진단평가 도구에 나온 자가(自家)진단 설문을 살펴보면 알기 쉽다.


시계 읽기나 거꾸로 세기, 올해의 연도 등 일상적인 기본 사항마저 기억하지 못하거나 5개의 항목을 듣고도 한두개 밖에 기억 못한다면 치매일 수 있다.

그러나 전화번호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사람의 뇌는 구조적으로 7개까진 잘 기억하지만 8개를 한꺼번에 기억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114 전화번호 안내에서 알려주는 여덟자리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한다고 치매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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