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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가공식품 '세계로'

중앙일보

입력

우리나라 야생녹차의 주산지인 경남 하동군 화개면 일대 지리산 자락 야산에는 요즘 녹차 따는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녹차 가운데 최상품으로 쳐주는 곡우(穀雨.20일) 직후의 어린 차 잎을 따기 위해서다.

하동군 내 야생 녹차밭 면적은 4백74㏊(1천2백여 농가)로 1991년의 1백16㏊(5백4농가)에 비해 크게 늘었다. 지난해에는 46개 녹차제조업체에서 2백61t, 1백80억원 어치를 생산해 이 지역 최대의 산업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2004년으로 예정된 농산물 시장개방 확대에 따라 녹차도 수입품이 넘쳐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이에 따라 이 지역 녹차업체들과 농업 관련기관들은 녹차를 활용한 새로운 제품 개발로 수입 개방에 대비하고 있다. 경남농업기술원은 녹차 추출물이 들어 있는 액체 세제와 녹차 아이스 캔디의 특허출원을 마치고 농가에 기술 이전을 추진 중이다.

하동군도 올해부터 농업기술센터에 녹차 전문팀을 만들어 녹차산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이 하동군 화개면 용강리 ㈜산골제다 김종관(42.사진)사장이다.

쌍계사 앞 산골에서 3대째 녹차를 만들고 있는 그는 1994년부터 녹차를 이용한 가공식품 개발에 들어가 지난해 발명특허를 받고 본격 생산 중이다.

그는 녹차잎이 나는 계절인 4.5월에는 어린 잎으로 녹차를 만들고 나머지 기간에는 묵은 잎으로 각종 가공식품과 의류.술 등을 만든다. 연중 녹차 관련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구조개편을 시도한 것이다.

현재 그가 생산하는 제품은 녹차냉면.녹차국수.녹차수제비.녹차우동.녹차된장.녹차동동주.녹차김치.녹차한과 등 가공식품과 녹차비누.녹차양말 등 공산품까지 모두 20여종에 이른다.

그는 1992년부터 하동지역 야생 녹차제조법의 맥을 잇는 조태연(작고)씨의 제자 3명과 함께 녹차를 만들었다. 그러나 마구 늘어나는 업체들 속에서 녹차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판단해 방향을 틀었다.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녹차 잎을 섞은 부침개가 문득 떠올라 1994년 초 녹차국수를 만들었으나 색이 검게 변해 실패했다"는 김 사장은 "물려받은 논.밭을 팔아 마련한 7억원을 개발비로 털어 넣으며, 3년간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섬유질을 걸러낸 농축액과 녹차잎을 이용한 국수 생산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생산 첫해인 1997년에는 매출이 2억여원에 불과했으나 입소문을 타고 주문량이 크게 늘어 올해는 50억원 어치를 생산할 계획이다.

지난해 7월 미국에 6만달러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해외 주문도 늘어 올들어서만 20만 달러를 수출했다. 중국.필리핀 등에 현지 공장설립도 추진 중이다.

그가 생산하는 녹차 가공식품들은 색소.방부제가 들어가지 않는 데다 엽록소.비타민C 등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녹차양말.녹차속옷은 오래 착용해도 냄새가 나지 않아 인기다.

이런 공로로 2001년 경상남도로부터 '자랑스런 농어업인상'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농민신문사가 주최한 제2회 영농실패 극복사례 수기공모에서 우수작을 받았다.

김사장은 "값싼 수입산 녹차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녹차를 이용한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개발하는 길 뿐"이라고 말했다.

◇ 하동 야생녹차

신라 흥덕왕 3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겸이 차나무씨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것이 시작이다.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산자락에서 야생상태로 자라는 것이 특징.

손으로 비빈 뒤 옅은 불로 덖는 전통방법을 고수해 수제차 특유의 향과 깊은 맛을 낸다. 정부지정 문화관광축제인 제8회 하동 야생차 문화축제가 다음달 8~11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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