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코로나19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백신 배포 일정조차 감감무소식인 상황이다. 백신 접종 일정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백신을 과도하게 확보했을 경우 폐기문제를 먼저 우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접종 전부터 과도한 행정적인 판단을 하느라 한시가 급한 백신 확보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野 의원 "왜 3000만? 5000만 확보해야"
15일 국회회의록에 따르면 박 장관은 지난달 26일 제10차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과 백신 확보 수량과 관련한 논의를 했다. 이때는 한국 정부가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공급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나온 이후다.
강 의원은 박 장관 측에 백신을 3000만개만 확보 중인 이유를 물었다. 유·무상 접종과 상관없이 5000만개를 준비해 최대한 많은 국민이 백신을 맞을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강 의원은 "3000만개만 준비할 필요가 뭐 있느냐. 유료로 하든 해서 국민들이 다 (백신을) 맞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5000만개를 갖고 국민들이 (접종을) 무상으로 하든, 유상으로 하든 맞고자 하는 사람은 맞게 해야 도리가 아니겠냐"고 물었다.
강 의원은 "다른 나라들은 지금 (백신을) 맞는다고 하고, 12월에 맞는다 하는데 우리는 어찌 됐느냐는 국민의 아우성이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박 장관은 분량과 관련해 "정부의 목표량은 최소치가 60%(3000만개)에 해당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이상의 물량은 지금 확보를 해 나가고 있다. 강 의원님이 걱정하는 부분을 저도 공감한다"고 답했다.
박능후 "과도하게 비축하면 폐기 책임"
3000만개를 우선 확보한 상황을 설명하던 박 장관은 행정적인 문제를 거론했다. 박 장관은 "행정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백신을 과도하게 비축했을 때 그것을 몇 개월 이내에 폐기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그에 따르는 사후적인 책임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백신이 남아 폐기해야 할 상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답변이다.
박 장관은 "저는 정부 당국자로서 기꺼이 책임을 지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백신은 세계 어느 나라든 특정 그룹은 거부반응을, 심리적으로 안 맞겠다는 연령층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서 "대부분 젊은 층이다"라고 덧붙였다.
박 장관이 '젊은 층의 심리적 백신 거부' 사례로 든 것은 인플루엔자 백신이다. 그는 "인플루엔자 백신을 목표한 만큼 다 못 가고 있다"고 했다.
박 장관은 "코로나19 백신의 경우에도 5000만 도즈(1회 용량)를 다 확보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맞지 않는 분들이 분명히 많이 있어서 국민들이 백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조사하고자 조사를 설계 중"이라고 했다.
강 의원은 박 장관의 설명을 듣고는 "(국민들이 백신을) 안 맞으면 내가 다 사겠다"며 "내가 사서 내다 팔겠다"고 재차 백신 확보 물량 확대를 촉구했다.
미국 듀크대 글로벌혁신센터에 따르면 캐나다는 인구 대비 527%에 달하는 백신을 확보했다. 전 인구가 5번은 맞을 수 있는 양이다. 영국은 290%, 호주도 226%, 칠레의 경우 223%에 해당하는 백신을 확보했다고 한다. 미국도 인구대비 백신 확보량이 170%에 이른다.
강기윤 "국민 생명을 타산적으로 접근한 것"
강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 당국자들의 관료적인 접근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국민이 5000만명인 것을 정부가 까먹은 것 아니냐"며 "젊은이들이 안 맞을 수 있다며 3000만명분만 확보한 것은 정말 크게 혼쭐나야 한다. 국민 생명을 타산적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캐나다 등 선진국이 인구수보다 많은 백신을 선 확보한 것과 관련해 강 의원은 "캐나다와 미국이 백신을 500%, 200% 구매한 이유도 백신이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반년 뒤에 또 맞아야 하는 상황까지 고려한 것"이라며 "우리는 전 국민이 한 번도 다 못 맞는 이런 짜증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정부의 관료적 사고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