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당은 답 알려줘도 모른다" 前의원이 때린 국민의힘 현실

중앙일보

입력 2020.12.14 18:04

업데이트 2020.12.14 18:46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남중빌딩에 위치한 새 당사에서 열린 현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남중빌딩에 위치한 새 당사에서 열린 현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원인과 처방까지 보여줘도 이 당은 뭘 해야 할지 인지하지 못할 겁니다."

현장에서

지난 7~13일 중앙일보가 보도한 '외면받는 보수정당' 시리즈를 본 국민의힘의 한 전직 국회의원이 취재진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다. 객관적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이들이 여전히 국민의힘 내 다수로, 당의 체질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자조 섞인 동의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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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초선의원, 당직자들 사이에서도 보수정당 위기의 원인을 ①가치②세대③지역④인재⑤계급 등에서 다룬 걸 두고 "가슴에 와 닿았다"(초선 의원)는 반응이 많았다. "동어 반복이 아닌 제대로 된 비판을 해주니 고마웠다"(당직자) "정기국회가 끝나는 시점에 변화가 필요한데 당에 경종을 울렸다"(비대위 관계자)며 반색하는 이들도 다수였다. 윤석열 검찰총장 해임 논란, 공수처법 입법, 부동산 민심이반 등 굵직한 현안이 정국을 뒤덮었어도 "변화 없이는 생존이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국민의힘 의원 상당수는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을 역전했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내심 표정 관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윤석열-추미애 갈등으로 상승한 지지율은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계하면서도 "부동산 대란 등은 내년 보궐선거,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 괜찮은 국면이다. 해볼 만 할 것"(재선 의원)이라는 일종의 자위다. 민주당이 서울시 국회의원 49명 가운데 41명, 구청장 25명 중 24명, 시의원 109명 중 101명을 확보한 현실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위기의식 대신 당을 지배하는 정서는 '남 탓'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부터 시작된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는 현상이 여전하다. 최근까지도 "왜 포털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는지 알겠다"(박대출 의원) "법조영역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 버린 현실"(전주혜 의원) 등의 발언이 나왔다. 당 미디어특위는 기울어진 언론지형을 바로잡겠다며 산하에 언론보도 모니터링팀을 가동 중이다. 보수정당 최대의 미덕으로 손꼽히는 유연성·적응력은 희석되고 갈수록 경직되는 양상이다.

1997년 총선 참패 이후 10년 이상 방황한 영국 보수당의 재집권은 진지한 성찰에서 시작됐다. 30대 젊은 당수를 뽑고 “새로운 출발(Fresh Start)”을 선언했으며, 당수를 결정할 때 전 당원이 참여하는 방식을 처음 도입하는 등의 형식에 방점을 찍은 쇄신이 있었지만, 유권자들은 "부족하다"고 여겼다. 4년 후인 2001년에도 영국 보수당은 의석수를 고작 1석(165석→166석) 늘리는 데 그쳤다. 이후에도 보수당은 쇄신 노력을 꾸준히 이어갔다. 2005년 당수가 된 데이비드 캐머런이 ‘현대적이고 공감하는 보수주의(modern, compassionate conservatism)’를 앞세우는 등 당의 좌표를 새로 설정하는 등의 노력이 있은 뒤인 2008년, 런던시장 자리를 빼앗아 오며 집권의 단초를 마련했다.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다. 세대·지역·인재·계급에 걸쳐 나타나는 전방위적 고립 현상, 이에 따른 전국선거 4연패가 '내 탓'이라는 자각부터 하는 게 먼저다. 국민의힘이 야당이 된 건 이제 겨우 3년 남짓이다. 남 탓으로 일관한다면 방황은 이제 시작일 수도 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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