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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우울한 서울지도'...강남에 갇힌 그들이 놓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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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외면받는 보수정당] ⑤계급고립

요즘 정치권에선 단연 윤석열 검찰총장이 화두입니다. 여론조사에 따라 차기 대선후보 1위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꼭 1위가 아니더라도, 어느 여론조사를 막론하고 야권 잠룡들 중엔 가장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윤석열의 부상’은 누가 봐도 문재인 정부의 위기입니다. 그렇지만 제1야당 국민의힘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현 정부에서 임명된 검찰총장이 야당의 존재를 지우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은 떨어지는데, 국민의힘 지지율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1~3일 전국 18세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그 전주보다 2%포인트 낮아졌습니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총선 패배 후 지금까지 국민의힘 지지율은 20% 박스권을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보수 성향 유권자들조차 국민의힘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응답자 가운데 스스로 보수 성향이라고 응답한 이들(22.8%) 중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이들은 43%로 과반에 못 미쳤습니다. 한 마디로 ‘윤석열을 택할지언정, 국민의힘은 아니다’란 겁니다. 왜 이렇게 보수야당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것일까요. 건전한 정당 정치를 위해선 능력있는 제1야당의 재건이 필수적입니다.

중앙일보는 보수야당이 처한 현실을 ①가치상실 ②세대고립 ③지역고립 ④인재고립 ⑤계급고립의 5개 분야로 나눠 하나씩 짚어봅니다. 이번은 5회 ‘계급고립’ 편입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 지역별 득표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10년 서울시장 선거 지역별 득표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민의힘이 수도권에서 서울 강남 등 일부 부촌에 고립된 건 10여년 됐다. 이같은 양상이 처음 부각된 건 2010년 서울시장 선거 때였다. 당시 오세훈 전 서울시장(47.43%)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46.83%)에게 서울 상당수 지역에서 패했지만, 강남 3구에서 몰표를 받고 강동·용산·영등포에서 신승하며 0.6%포인트 차로 간신히 서울시장 자리를 지켰다.

국회의원 선거를 봐도 '보수정당 강남 고립'은 2010년 이후 심화했다. 2004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도 서울에서 16석(열린우리당 32석)을 건졌고, 2008년 40석으로 압승했지만 이후 내리막이었다. 2012년 총선 때 16석, 2016년 12석으로 쪼그라들다 올해 총선 때는 8석, 한 자리 숫자로 주저앉았다.

‘강남정당’ 된 국민의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강남정당’ 된 국민의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16년 총선에선 강서(김성태)·동작(나경원)·강북(정양석)·도봉(김선동) 등에서 의석을 확보했지만, 올해 4월 21대 총선에선 사실상 강남에 완전히 갇혔다.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이 서울에서 승리한 지역구 8개 가운데 7곳(강남갑·을·병, 서초갑·을, 송파갑·을)이 강남 3구였다. 강북에서는 용산 한 곳이 전부다.

정치평론가인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국민의힘의 득표 지역을 보면 서민·중산층보다는 상류층·기득권을 대변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누구를 대표하는 정당인지 원점에서부터 돌아볼 시점”이라고 해석했다.

한발 더 나아가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힘에게 시장경제 옹호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확고하게 지켜야 한다”며 “먼저 ‘공정한 경쟁’이라는 정체성을 배경에 깔고, 재벌·기업이 그 가치를 벗어나면 비판할 수 있어야 서민·중도층의 표심을 잡을 수 있다”고 봤다. 공정 경쟁 등 가치 중심으로 당이 움직여야 ‘부자·기득권 vs 서민’ 프레임을 깨면서 '운동권·노조 특권층 vs 공정한 시장' 구도로 전환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103명 현역 중 노동계급 출신 달랑 2명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ILO 핵심협약 비준 준비를 위한 입법공청회에서 진술인으로 참석한 민주노총, 한국노총 관계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ILO 핵심협약 비준 준비를 위한 입법공청회에서 진술인으로 참석한 민주노총, 한국노총 관계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한국 보수정당이 '기득권 이미지'를 공고화한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감력 부재'를 꼽는다. 당의 기본 정책인 ’친기업·시장경제‘는 꾸준히 앞세우면서, 약자에 대한 배려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 출신인 한 국민의힘 의원은 “과거 집권기, 당 일각에서 노동개혁을 강조하며 '쉬운 해고'란 말을 너무 쉽게 썼다. 중산층 이하 유권자가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탄력 근로에 따른 임금 유연화 정도를 언급했어야 했다. 정책 대상에 대한 심리적 배려가 없었던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관료·법조인 위주의 국회의원 인적 구성이 공감력 부재를 불러온 구조적 배경이라는 지적도 많다. 실제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현역 의원 103명의 출신 성분을 보면 관료(29명), 당료·지역정치인(25명)과 법조인(13명) 출신이 절대다수(65%)를 차지했다. 노동자 출신은 2명(박대수·임이자 의원)이 전부로, 기업인(8명) 출신과 비교해도 4분의 1 수준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판·검사, 관료, 기업인만 모인 정당에서 노동자까지 배려하는 정책을 입법할 수 있겠느냐”(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 소장)는 말이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보수 정치인인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했고, 영국 보수당이 공동체적 메시지를 낸다'는 사실을 국민의힘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낡은 보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실제로 국회의원 중에 기득권이 많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호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 정책을 집권 후에는 실시하지 않아 상당수 서민 계층이 배신감을 느꼈다. 예전에는 반공 프레임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 정당을 찍어줬지만, 이제는 세대가 바뀌면서 위기가 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을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하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소수의 가진 집단과 그렇지 못한 다수의 일반 국민이 점점 괴리되고 있다. 정치인 입장에선 소수 집단에 아무리 어필을 해도 다수집단의 표를 받지 못하면 집권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성장 만을 외쳐서는 표를 받을 수 없는 사회가 됐다는 걸 국민의힘이 인지를 못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추진 '약자와의 동행'도 삐걱

현장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약자와의동행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현장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약자와의동행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5월 취임 직후 기득권 이미지를 탈피하겠다며 '약자와의 동행'을 당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동안 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정당들은 기득권을 대변하는 정당이었다. 기득권을 타파하지 않으면 집권은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국민의힘이 처한 계급고립 현상을 타파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이마저도 삐걱거린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노동자들을 국회로 불러 간담회를 하거나 파업농성 현장을 찾는 등의 제스쳐는 몇 차례 있었지만, 실제 정책적으로 구체화하지 않고 있어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대표적 사례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10일 중대재해법과 관련,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를 초청해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당 지도부에서도 “산업 안전은 정파 간에 대립할 문제가 아니다”(김종인 비대위원장)거나 “너무 늦었다. 판사 시절 산재 사건에 대해 문제의식을 많이 갖고 있었고 국회 환노위에서도 이런 문제를 주장했는데 입법까지 연결하지 못해 아쉬운 점이 많았다”(주호영 원내대표)며 협력할 뜻을 내비쳤지만, 성과는 없었다. 중대재해발생시 원청업체 사업주에게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등 형사처벌을 더 강화하면 기업 활동이 원천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아서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인권·안전 등의 분야에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은 충족하려고 노력해야 전근대적 친기업주의 정당 이미지를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도 “한국 보수정당, 특히 국민의힘 주류에는 자유주의적 토대가 약하다 보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며 “시장경제를 옹호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하고, 시장의 건강한 질서를 강조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웅 "국민의힘, 실력 보여줘야 적폐 프레임 벗는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서울 송파갑)은 1970년생으로 당내 대표적 소장파 초선 의원이다. 김 의원이 중앙일보의 ‘외면받는 보수정당’ 기획에 공감을 표하며 기고문을 보내왔다. 아래는 기고 전문.

김웅 국민의힘 의원. 김경록 기자

김웅 국민의힘 의원. 김경록 기자

1945년 총선을 앞둔 영국 보수당은 자신만만했다. 2차 세계대전을 승전으로 이끈 처칠 수상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기 때문이다. 그가 가는 곳마다 위대한 영웅을 보기 위한 군중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지지율은 80%에 육박했다. 총선 결과는 보나 마나 보수당의 압승으로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뜻밖이었다. 노동당이 절대다수인 393석을 석권하였다. 보수당은 불과 213명만이 당선되었다. 바로 ‘보수당 대학살(conservative Massacre)’이라고 불리는 1945년 총선이다.

눈에 보이는 지지율이 투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정치계의 속설이 고스란히 드러난 선거였다. 결국, 지지율이 높아서 선거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승리하면 지지율은 오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영국 보수당은 처칠을 들고서도 왜 패배했을까? 그것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보수당은 노동당과 전시연립내각을 구성했다. 이때 보수당은 빛이 나는 대외 분야와 전쟁 수행 분야를 담당했고, 국내 민생 문제는 노동당에 맡겼다. 그로 인해 노동당은 주택, 보건, 공적부조 등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정확히 읽을 수 있었다.

총선에서 노동당은 경제, 사회, 복지 정책을 제시했고, 보수당은 민생과 노동에 무관심했다. 이미 1942년 12월 비버리지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후생과 복지, 노동 문제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보수당은 전쟁 영웅의 지지율에만 취해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삶이 찾아온다. 영국 국민은 그 삶을 책임져줄 수 있는 정당을 선택했다.

패배 이후 보수당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국민의 인식이었다. ‘보수당은 사회개혁, 복지정책에 무관심하다’, ‘보수당은 우리 같은 서민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이런 부정적인 선입견을 깨기 위해 보수당은 확실하게 변했다. 청년당원을 모집하고 조직을 정비하며 기금을 모집하였다. 당내 후보 선출 방식도 바꿨다. 선거비용을 후보가 아닌 지역당이 부담하면서 부자가 아닌 청년들도 보수당의 후보가 될 수 있었다.
국민의 생활을 책임지기 위한 정책과 공약들이 개발되었다. 연간 주택 30만 호 건설 계획, 식품 및 연료 공급 계획 등이 적극적인 노동친화 정책들과 함께 제시되었다.

그 결과 보수당은 1951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승리 이후에도 보수당 내각은 변화에 대한 약속을 지켰다. 사회적 조화를 중시했고 노동과 복지에 힘을 기울였다.

영국 보수당의 실용성과 유연성은 지금 국민의힘에 가장 필요한 해법이다. 국민의힘도 이에 따라 공정경제3법과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노동법 개정에 앞장서고 있다. 소외와 싸우기 위해 약자 그리고 호남과의 동행도 선언했다.

물론 이러한 활동들이 바로 지지율의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관성의 법칙은 물리적인 세계뿐 아니라 현실 정치에도 존재한다. 따라서 지지율에 일희일비하는 것보다 시대의 변화에 대한 인식과 적응력을 키워야 한다. 국민의힘이 앞으로 갈 길은 더욱 멀다. 청년과 소외 계층의 정치인을 육성하고 그들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실질적 자유의 확장을 위해 노동과 복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들을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을 더 낫게 해주는 정당이라는 실력을 보여줘야 적폐라는 프레임을 돌파할 수 있다. 따라서 지지율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대와 변화에 대한 인식과 적응력이다. 시대의 변화는 지지율보다 은밀하게 찾아오나 그보다 훨씬 파괴적이다.

한영익·윤정민·정진우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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