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도 민주당도 지지리 싫어도, 국민의힘은 못찍겠다는 20대

중앙일보

입력 2020.12.08 05:00

업데이트 2020.12.08 09:05

[외면받는 보수정당] ②세대고립

요즘 정치권에선 단연 윤석열 검찰총장이 화두입니다. 여론조사에 따라 차기 대선후보 1위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꼭 1위가 아니더라도, 어느 여론조사를 막론하고 야권 잠룡들 중엔 가장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윤석열의 부상’은 누가 봐도 문재인 정부의 위기입니다. 그렇지만 제1야당 국민의힘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현 정부에서 임명된 검찰총장이 야당의 존재를 지우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은 떨어지는데, 국민의힘 지지율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1~3일 전국 18세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그 전주보다 2%포인트 낮아졌습니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총선 패배 후 지금까지 국민의힘 지지율은 20% 박스권을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보수 성향 유권자들조차 국민의힘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응답자 가운데 스스로 보수 성향이라고 응답한 이들(22.8%) 중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이들은 43%로 과반에 못 미쳤습니다. 한 마디로 ‘윤석열을 택할지언정, 국민의힘은 아니다’란 겁니다. 왜 이렇게 보수야당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것일까요. 건전한 정당 정치를 위해선 능력있는 제1야당의 재건이 필수적입니다.

중앙일보는 보수야당이 처한 현실을 ①가치상실 ②세대고립 ③지역고립 ④인재고립 ⑤계급고립의 5개 분야로 나눠 하나씩 짚어봅니다. 이번은 2회 ‘세대고립’ 편입니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중인 이수빈(23)씨는 스스로를 보수로 규정한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다. 여당이 하는 일이 신물 난다고, 정부 정책에 분노한다는 그는 “입시도 취업도 불공정한 사회고, 부동산 정책은 무능의 극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씨는 21대 국회에서 원내 유일의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다. 지난 4월 총선때도 국민의힘 후보를 찍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아무리 싫어도, 국민의힘이 좋아지진 않는다”는게 이씨의 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3년 반 넘는 기간 동안 국민의힘은 ‘보수조차 외면하는 보수정당’이란 꼬리표를 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거부감이 강하다. 한국갤럽이 매주 발표하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10ㆍ20대 유권자 비율은 2018년 1월 첫째 주 77%에서 지난주 40%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그러나 같은 기간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10·20대 유권자는 4%(당시 자유한국당)에서 7%로 늘어났을 뿐이다.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많이 늘어난 상황에서도 민주당이 10·20대에서 36%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20%를 넘은 세대는 50대(25%)와 60대 이상(32%)이었고,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높은 세대는 60대 이상이 유일했다. 여전히 고령층이란 세대 울타리에 고립된 것이다.

20대가 외면한 보수정당.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0대가 외면한 보수정당.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최근 출범한 국민의힘 내 청년당 대표인 김병욱(43) 의원은 “20대는 이념보다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걸 원하고 공정ㆍ민생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오히려 40~50대보다 빠르게 정부에 등 돌리는 세대”라며 “우리가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하고 향후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거란 희망도 있지만, 아직 그걸 하지 못했다는 건 뼈아프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마주한 성적표는 여론조사 숫자보다 훨씬 심각하다. 중앙일보가 이화여대 재학생 102명을 대상으로 ‘국민의힘’ 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냐고 묻자, 답은 아래와 같았다.

답답함, 무능함, 안타까움, 당혹감, 대책 없음, 진부함, 늙음, 한숨 나옴, 감수성 없음, 아이고 할아버지, 혐오, 비호감….

국민의힘이 반길만한 답변은 단 두건(신뢰, 긍정적)이 전부였다.

세대고립은 국민의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문제다. 지적이 잦았고, 반성문도 자주 썼다. 2018년 지방선거 참패 뒤 들어선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는 “잇따른 선거 패배 원인을 엄정히 진단ㆍ평가하겠다”며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에 패인 분석을 맡겼다. 그 결과 나온 ‘한국 보수 정당의 몰락과 재건: 자유한국당, 부활할 수 있을까?’란 보고서에선 세대고립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연령층이 낮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보수 정당 및 후보에 대한 지지가 높지 않다는 사실 자체는 그다지 놀라운 발견이라고 할 수 없으며, (중략) 이러한 구도를 흔들기 위한 노력에서 철저하게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함.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변화와 혁신이 수반되지 않는 한 자유한국당이 청년 유권자들을 보수 정당의 지지층으로 편입시키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음.

당시 보고서는 “청년 유권자들이 어떤 이유에서 당을 지지하지 않는지 파악하는 것은 장기적인 보수정당의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NK디지털타워에서 열린 '국민의힘 청년당 창당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NK디지털타워에서 열린 '국민의힘 청년당 창당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그러나 이 때의 조언은 약이 되지 않았다. 지난 4월 총선 참패 후 당이 만든 ‘총선백서’에는 “20~40대 사이의 청년 계층은 여전히 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당이 이런 세대의 고민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고, ‘고질적인 청년층 공략 실패’ 같은 문구도 등장했다. 지금도 당 지도부는 “청년에 대해 당이 관심을 안 갖고 선거 때문 청년 몇 사람 내세우는 식으로 했다”(6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청년 투표율이 높아지는 것을 걱정하는 당은 절대 집권할 수 없다”(지난 7월 주호영 원내대표)며 ‘세대 확장’을 강조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나이는 같은데…고령층에 고립된 보수정당

선거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같은 실패가 반복되자, 당내에선 “단순히 의원들 나이나 청년 정치인이 없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뭘 해도 안 된다고 보는 게 맞다”(30대 보좌진)는 자조까지 나온다.

국회의원의 나이만으로는 보수야당의 세대고립을 설명할 수 없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지역구 의원 평균 연령은 민주당과 같은 55.6세였다. 보수정당의 30ㆍ40대 지역구 당선자 비율이 37.0%(17대 총선)에서 14.3%(21대)로 낮아졌지만, 같은 기간 전체의 30ㆍ40대 국회의원 비율도 42.2%(17대)에서 13.4%(21대)로 줄었다.

국민의힘 청년위가 지난 9월 SNS에 올린 위원 소개 포스터. [국민의힘 청년위원회 페이스북]

국민의힘 청년위가 지난 9월 SNS에 올린 위원 소개 포스터. [국민의힘 청년위원회 페이스북]

이와 관련해 총선 때 수도권에서 낙선한 30대 초반의 당 관계자는 지난 9월 있었던 당 청년위원회의 ‘포스터 논란’을 언급했다. 청년위가 SNS에 올린 구성원 소개 포스터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나라’, ‘육군땅개알보병’ 등의 문구가 포함돼 논란이 된 사건이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그런 게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걸 당 청년 조직 행사나 모임에 가면 곧장 알 수 있다. 당의 청년이라는 사람 다수가 평범한 대학생이나, 언론에서 말하는 외역 확장 대상으로서의 청년이 아니었다. ‘자유 대한민국’과 ‘애국 보수’를 입에 달고 사는, 행사 내용보다 국기에 대한 경례나 애국가 제창에 더 집착하는 ‘젊은 태극기 부대’에 가까웠다.”

지난달 26일 중앙일보와 보수정당의 현주소에 대해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진행한 이준석 전 최고위원도 “당의 20~30대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정치를 배웠는지 궁금할 정도로 말끝마다 우리 자유 우파, 저쪽 좌파 같은 얘기를 하는데 이런 대화를 하는 분이 오히려 젊은 층에 다가가기 어렵지 않겠냐”고 평가했다.

이런 고민을 공유하는 당내 인사들이 거론한 대안은 근본적인 대수술이다. 지난 2월 당에 합류해 총선을 치른 천하람(34) 변호사는 “행사에 청년을 투입하고, 당 지도부에 끼워 넣고, 청년 조직을 만들고 없애고 반복하는 게 답이 아니다. 이벤트성의 ‘어색한 젊은 척’ 대신, 작은 부분에서라도 진짜 청년들이 원하는 의제를 파고드는 당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 당시 보고서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언급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형식이나 숫자 대신, 내용과 감정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청년 대변인 출신인 민주당 관계자는 “당직자나 의원이 얼마나 어리냐를 신경 쓰는 대신 노동ㆍ환경ㆍ성소수자 등 청년 이슈를 꾸준히 얘기해야 한다”며 “외부에서 보수정당을 보면 젊은 층의 반감을 살만한 정치 공방, 반대를 위한 반대밖에 안 보인다. 민주당도 그런 걸 하지만, 최소한 청년 이슈에 거리를 두거나 무관심하진 않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핵심관계자는 “비호감은 결국 감정의 영역으로, 우선 감정선을 맞춘 다음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가장 취약했던 부분이다. 옳은 일을 한다는 핑계로 보기 싫은 모습만 보여줬다”고 반성했다.

보수 유권자도 외면하는 보수정당.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보수 유권자도 외면하는 보수정당.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초유의 대통령 탄핵 극복한 미국 공화당
한국 보수정당의 암흑기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기점이다. 미국 보수정당이 1970년대 수세에 몰리게 된 계기도 현직 대통령이 연루된 대형 비리 사건이었다. 이면엔 복잡한 맥락이 존재하지만, 상대 당에 대한 불법 도청 및 은폐 시도가 드러난 워터게이트 사건이 ‘결정적 한방’이었음은 분명하다.

당시 사건에 연루됐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스로 하야했고, 공화당은 오명을 쓴 채 다음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한번의 패배 이후 침체기를 끝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다음 대선에서 이기며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 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정치세력이 위기에 빠져 있던 그 순간, 기존에 추구하던 가치들을 버리거나 파괴하는 대신 수정을 거듭해 새 조류를 만들었다. 그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함께 이끈 신자유주의 흐름이다. 공과 과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작은 정부를 내세운 ‘레이거노믹스’와 신자유주의 정책은 그의 재임기간 동안 경제 성과로 나타났다. 이 성과는 한동안 수세에 몰렸던 공화당이 다시 정당으로서의 자신감을 찾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또 취임 때 나이가 만 69세로 당시까지 최고령 대통령이었던 그는 젊고 참신한 ‘뉴페이스’나 개혁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자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위대한 소통가(Great Communicator)’로 불릴 만큼 달변가이기도 했다. 국민의힘 스스로 “가장 취약한 점”으로 꼽는 호감가는 이미지 구축, 유권자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소통 능력 등에 있어선 좌우를 막론하고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덕분에 레이건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낳은 부작용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역대 대통령 중 한 손안에 드는,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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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익·윤정민·정진우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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