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결혼 보름만에 사라진 신랑, 시부모도 신혼집도 다 가짜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기 피해 일러스트. 연합뉴스

사기 피해 일러스트. 연합뉴스

“평소 주위에 인사 잘하고 돈도 잘 쓰는 호남형이었다.” 최근 사기 결혼까지 하며 거액을 가로챈 뒤 도주했던 40대 남성 A씨를 두고 나온 말이다.

부산진경찰서, 9일 40대 사기 혐의 구속 #5명에게서 5억8000만원 가로챈 혐의 받아 #한 여성은 사기 결혼에 4억원을 뜯기기도 #

 A씨는 지난해 봄부터 부산 도심의 한 사설 주차장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다. 이곳에 자주 주차를 하던 같은 또래의 여성 B씨를 알게 돼 지난 9월 결혼식까지 올렸다. 하지만 결혼식 보름 뒤 혼인신고를 하려 하자 A씨는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갔고, 휴대전화번호를 바꾼 뒤 종적을 감췄다.

 B씨가 A씨 지인을 찾아다니며 확인한 결과 A씨가 했던 말은 모두 거짓이자 자신의 돈까지 가로챈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B씨는 A씨를 경찰에 고소했고, 최근 제주도에서 붙잡힌 A씨는 사기 혐의로 9일 구속했다. 조사결과 A씨는 5명에게서 4억8000만원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사연은 이렇다. A씨는 B씨를 주차장에서 알게 된 뒤 꽤 넓은 시설의 주차장 일부가 어머니 소유이고, 나머지는 인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어머니로부터 주차장 부지를 물려받게 된다고 했다. 또 어머니 소유의 상가가 있고, 은행에 거액의 예치금이 있다고 자랑했다. 돈 많은 사업가 행세를 한 것이다.

 A씨에게 호감이 있던 B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결혼을 전제로 사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지난봄 결혼을 하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 9월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장에는 시어머니와 시이모 등 수십명의 하객이 찾아왔다. 하지만 A씨 잠적 뒤 확인한 결과 이들 하객은 모두 결혼 대행업체에서 부른 아르바이트생들로 밝혀졌다. 돈이 많다던 A씨 어머니도 어렵게 살고 있었다.

 A씨가 거주하며 신혼집으로 쓴 아파트도 가짜였다. 자신 소유로 시가 7억2000만원 정도 하는 아파트라고 했지만, 확인해보니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60만원씩 주는 월셋집에 지나지 않았다.

부산진경찰서. [연합뉴스]

부산진경찰서. [연합뉴스]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A씨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을 재산의 증여세와 투자비 명목으로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받아간 돈만 4억원이나 됐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주위에 더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주차장 종업원을 하면서 알게 된 동업 희망자에게서 1억원, 또 다른 여성에게서 8000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2016년과 2018년에도 두 차례 부산과 인천에서 ‘항공사 부기장’ 행세 등을 하며 여성에게서 1억원을 받아 가로챈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A씨가 조사 내내 묵비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사기로 가로챈 돈이 현재 얼마나 남았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