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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법, '제2 임대차법'되나…노사 동상이몽에 혼란 불보듯

중앙일보

입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왼쪽 네 번째부터)과 김재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비준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왼쪽 네 번째부터)과 김재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비준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등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위한 이른바 '노조3법'이 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기습 통과하면서 경영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ILO 협약 비준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충분한 숙의 없이 도입하면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고 경고해왔다.

입법 과정에서 경영계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최소안의 방어권도 확보되지 않은 만큼 부동산 '임대차2법'처럼 취지는 좋아도 시장 내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①회사 떠난 자의 쟁의 행위, 어디까지 허용? 

이번 노조법 개정안의 핵심 중 하나는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한 것이다. ILO는 물론 정부에서도 권고했기 때문에, 경영계도 무조건 반대만 하긴 힘든 사안이다. 그러나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노사 양측 모두에게 민감한 사안이다.

기존 정부안은 '비종사 조합원이 사업장 안에서 노조 활동을 할 때는 노사 합의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회사를 떠난 사람이 회사 안에서 농성·쟁의 행위를 할 땐, 노사가 정한 장소에서 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환노위는 이 문구를 삭제했다. '효율적인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라는 추상적 문구만 남았다.

이 때문에 법조항 해석부터 노사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됐다. 노동계는 이 문구를 '어디서든 쟁의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여기고, 경영계는 '어디에서도 쟁의 행위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상이몽(同牀異夢)식 해석이 가능하다. 법조항을 둘러싼 자의적 해석이 노사 대립을 더욱 부추길 것이란 지적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5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5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②실업자 대책이 노사 협의 의제될 수 있나? 

경영계는 해고자·실업자 관련 대책이 노사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용자 측에 거부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해고자·실업자 대책은 현행 노조법의 범위를 벗어난 의제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현재 노무를 제공하고 있는 노동자의 근로조건 유지·개선을 노사 협의 대상으로 두고 있다. 노조에 가입한 해고자가 퇴사자 복지 강화와 실업급여 인상 등을 주장할 경우 사용자 측이 해결할 범위를 넘어선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퇴사자는 근로자의 가까운 미래인만큼 넓게 보면 근로조건 개선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타협하기 힘든 쟁점이 될 공산이 크다.

③대체근로 거듭 강조하는 경영계, 왜? 

경영계는 특히 노조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을 거듭 건의했다. 기존 정부안에선 '주요 업무 시설의 일부·전부를 점거한 쟁의 행위 금지' 조항이 있었지만, 이 문구도 환노위에서 삭제됐다. 중요 생산 설비를 점거한 파업이 일반화하면 기업 내 자산 손상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때문에 사용자의 대항권 차원에서 대체근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독일·프랑스 등 주요국은 파견·기간제 노동자의 대체근로는 금지하지만, 하도급이나 신규 채용을 통한 방식은 허용한다. 반면 노동계는 대체근로를 통한 '사용자 대항권'은 "헌법에도 없는 권한"이기 때문에 허용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준희 경총 노사관계법제팀장은 "대체근로로 노동자를 채용하면, 인건비가 더 들기 때문에 이를 도입한 나라의 기업들도 선뜻 활용하고 있진 않다"며 "중대한 손실 가능성이 있을 때만 이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ILO 권고안은 노사 관계 선진국에선 부작용 없이 안착할 수 있는 내용일 수 있지만, 노사 대립이 극심한 한국에선 다른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후속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경제적 충격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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