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조법 처리 막전막후]문 대통령 사인 나오자 노조법 입법 독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일 국회에서 송옥주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주재로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3일 국회에서 송옥주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주재로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이걸 이행하려면 관련 법을 정비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노동조합법 등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갔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 간에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정부가 단독으로 법안을 만들었다. 노조법과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개정안이다. 올해 6월 정부는 이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에는 해고자와 실직자의 노조가입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폐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3년(현행 2년)으로 연장, 쟁의행위 시 사업장 점거 제한,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내 활동 허용 등이 담겨 있었다.

공무원 노조법은 현행 6급 이하로 제한된 노조 가입 기준을 삭제했다. 소방공무원과 퇴직 공무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했다. 교원노조법에선 퇴직 교원의 노조가입을 허락했다.

이들 법안이 제출되자 경영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노동계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와중에도 천막 농성과 총파업 등 장외 투쟁으로 극렬하게 반대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경총 노사관계발전자문위원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노사관계발전자문위원회를 통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을 논의했다. 뉴스1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경총 노사관계발전자문위원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노사관계발전자문위원회를 통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을 논의했다. 뉴스1

이해당사자인 노사 모두 반대…여당 주저주저

경영계는 해고자 등이 노조에 가입하면 가뜩이나 투쟁적 노동운동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해고자가 조합원 신분으로 해고한 회사를 상대로 임금과 단체협상을 벌이게 되는 기현상 등 조목조목 부작용을 설명했다.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 규정을 삭제하면 현재의 노사 구도를 고려할 때 결국 전임자 모두에게 회사가 임금을 줘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이는 노조의 자주성을 법으로 해치는 행위라고도 했다.

노동계의 불만도 증폭됐다. 사업장 점거 금지는 사실상 기업을 상대로 한 쟁의행위를 무력화하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노조 임원 임기가 2년인데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늘리면 위원장이 단체협상조차 못 할 수 있다는 주장도 폈다.

8일 오전 서울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다 관계자들의 제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전 서울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다 관계자들의 제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는 장외 투쟁으로 힘을 과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뻥파업' 논란에도 총파업을 벌였다. 8일에는 국회 본관 계단에서 기습시위를 하고, 서울지방노동청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전국 각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무실과 노동청 앞에서 산발적인 집회를 이어갔다. 한국노총은 국회 앞에서 김동명 위원장이 참여하는 천막투쟁을 진행 중이다.

지지부진에 문 대통령 콕 집어 처리 당부…단독처리 폭주 신호탄

이렇게 되자 더불어민주당도 강행 처리에 부담을 느끼며 주저했다. 아무리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도 코로나19로 일자리가 급감하며 고용시장이 무너진 상황이다. 노사관계마저 망가지고, 갈등이 유발하면 산업현장의 혼란을 수습할 방법이 없다. 특히 이해당사자인 노동계와 경영계가 모두 극렬하게 반대한다. 국회 환노위가 3~4일 이틀 동안 노조법 등에 대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었지만 일독하는 것으로 끝낸 것도 이 때문이다.

한데 4일 문재인 대통령의 사인이 나왔다. 이게 결정적이었다. 환노위 법안심사소위가 별 소득 없이 끝난 직후였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당부 사항이라며 "공정경제3법과 노동관련법 등 경제·민생을 보살피고, 선도경제 도전의 기반이 될 법안들도 정기국회 내에 성과를 거두길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언론사에 전했다. 강 대변인은 기자가 질문도 안 했는데 추가 설명을 했다. "주52시간제 안착을 위해 탄력근로제 개선과 관련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통과를 바란다는 말씀이셨다. 특수고용직과 프리랜서 등의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고용보험법 개정안,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등도 역시 대통령께서 처리를 당부하신 법안"이라는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이 법안을 콕 집어 제시한 것이다.

노동계가 반발하는 조항 모두 걷어내고 새벽 일사천리 처리

이때부터 더불어민주당의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경제나 기업 상황, 고용시장, 노사의 반발은 뒷전이었다. 대통령의 의중이 곧 법인 양 부산해졌다. 더불어민주당에선 "9일 본회의에 통과시키는 게 목표가 되지 않겠는가"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나흘 뒤인 8일 일사천리로 노조법 등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환노위에서 처리됐다.

우군인 노동계의 반발에 직장점거 금지 등 그나마 실낱같던 경영계의 대항권을 모조리 걷어내면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안건조정을 신청하며 버텼다. 그러나 정의당까지 여당 2중대 논란을 감수하며 가세하자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힘들었다. 결국 국민의힘은 안건조정위도, 전체회의도, 법안심사소위도 보이콧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환노위 간사는 "논의해봐야 어차피 (민주당이)식칼로 수술을 하겠다고 덤비는데, 심의가 무의미한 상황 아니냐"며 "(보이콧은)향후 벌어지는 사태에 대한 책임 공방에 우리를 들러리로 세우지 말고 확실하게 민주당이 책임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