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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서 교사 감금 초유사태" 극한대치 경원중 무슨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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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 걸린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 반대 현수막. 독자 제공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 걸린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 반대 현수막. 독자 제공

"강남 한복판에서 무법천지가 벌어져 교사가 감금당한 초유의 사태를 좌시할 수 없다" (서울교사노동조합)
"학부모한테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해야지 날치기로 혁신학교 지정하는 게 어딨나" (카페 '부동산스터디' 이용자)

서울 서초구 경원중학교의 혁신학교 지정을 두고 서울시교육청·학교 측과 지역 주민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주로 1인 시위를 벌이며 지정 철회를 요구하던 주민들이 최근에는 교문 주변에 수십명씩 모여 교장 면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7일에는 교문 앞 집회가 밤늦게까지 이어지면서 경원중 교사들이 위협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8일 서울교사노조는 경원중 교사들이 지난 7일 주민들에게 불법 감금당했다며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 반면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일부 주민들은 "학교서 나온 교사가 학부모를 차로 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할인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경원중 인근에서 차량 추돌 사건이 접수된 게 없다"고 밝혔다.

'혁신학교 반대' 현수막·청원…"절차상 문제"

서울시교육청 시민청원에 올라온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 철회 촉구 청원. 8일 오후 4시 현재 1만2000여명이 동의했다.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 캡처]

서울시교육청 시민청원에 올라온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 철회 촉구 청원. 8일 오후 4시 현재 1만2000여명이 동의했다.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 캡처]

갈등은 최근 경원중이 '마을결합형 혁신학교'로 지정돼 내년 3월부터 혁신학교로 운영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혁신학교 지정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원중 주변 아파트 입주자모임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어났다. 이들은 학교 주변에 '혁신폭력 웬 말이냐' '내로남불 졸속행정'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와 함께 서울시교육청에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청원을 올렸다. 이 청원은 8일 오후 4시 현재 1만2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 게시된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 철회 촉구 현수막. 경원중 학교장의 실명을 언급하고 있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 게시된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 철회 촉구 현수막. 경원중 학교장의 실명을 언급하고 있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혁신학교 지정은 교사 혹은 학부모의 50%가 동의하고,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의결한 뒤 교육청이 승인하면 확정된다.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이들은 학부모 투표에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학부모들이 투표 내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서초지역 학부모 커뮤니티에 한 이용자는 "혁신학교 지정 간담회나 설명회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학부모들은 진행하는 줄 몰랐다"며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 의견 수렴 공지에서는 '마을결합 중점학교'와 '마을결합 혁신학교'가 다를 바 없다는 거짓 정보를 공지했다"고 주장했다.

학부모 투표가 끝나기도 전에 학교 운영위원회 심의가 이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교 측의 공지에 따르면 학부모 투표 마감은 지난 9월 4일로 안내됐다. 하지만 운영위원회 심의는 이에 앞서 9월 2일 이뤄졌다.

교육청 "학부모 72%가 투표 참여…절차 문제없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해 8월 오후 서울 동작구의 한 중학교를 방문해 혁신학교 운영 방식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해 8월 오후 서울 동작구의 한 중학교를 방문해 혁신학교 운영 방식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지적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해당 투표에는 학부모 981명 중 710명이 참여해 69.7%(495명)가 최종 동의했다. 운영위 의결이 이뤄진 지난 9월 2일 기준으로는 636명이 참여해 69%가 동의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운영위 심의는 학부모나 교사 양쪽 중 한쪽의 동의율이 50%를 넘으면 이뤄질 수 있다"면서 "당시에 이미 교사 동의율이 80%에 도달했다. 학부모 투표도 진행 중에 충분한 동의를 얻으면 심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충분한 설명 과정이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온라인 설명회도 개최했고, 학교 e알리미를 통해 공지하고 투표를 진행했다"면서 "72%의 학부모가 투표에 참여했기 때문에 충분히 전체의 동의 의사를 얻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학부모 의견 다시 묻기로…"지정 취소는 아냐"

인근 주민들의 지정 철회 요구가 커지면서 지난 7일 경원중의 학교장과 운영위원장, 서울시교육청 교육혁신과장은 학부모의 의사 결정이 이뤄지면 혁신학교를 추진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사실상 지정 취소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합의문이 지정 취소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혁신학교는 한 번 지정되면 4년 후 재평가 때까지 취소할 수 없다"면서 "학부모가 아닌 부동산 카페나 주변 아파트 주민들 공세가 워낙 거세니까, 예외적으로 다시 재학생 학부모의 의견을 물어보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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