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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값 환불해달라" 아홉달째…항공사 전화는 오늘도 '먹통'

중앙일보

입력

“가족 3명이 체코항공 비즈니스 좌석 티켓을 구매했다가 환불을 신청했습니다. 1000만원이 넘는 금액인데 7개월째 묵묵부답입니다. 항공사 한국지점이 철수해 하소연할 곳도 없습니다. 내년 2월 이후에나 연락하겠다는 e메일만 받았습니다.”

“올해 초 타이항공 항공권을 샀다가 환불을 요청했습니다. 나중에 쓸 수 있는 ‘바우처’를 주겠다더군요.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바우처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환불을 요구했더니 회사가 파산 보호 상태라고 합니다.”

“올여름 에어로멕시코항공을 타고 칸쿤 신혼여행을 가려다 취소했어요. 3월에 환불 신청을 했는데 9개월째 소식이 없어요. 여행사는 항공사가 환불 업무를 거부하고 있다는데, 일단 예약을 대행한 여행사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항공권 환불·위약금 피해 상담 건 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항공권 환불·위약금 피해 상담 건 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이전 항공권을 산 소비자 중 상당수가 아직도 환불 조치를 못 받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올해 ‘항공권 계약 해지·위약금’ 관련 상담 건수가 12월 2일까지 9357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 상담 건수(3067건)의 3배가 넘는다.

환불 지연 1000건 넘는 항공사도  

항공권 환불 신청이 집중된 건 3월이다. 바이러스가 급격히 확산하자 전 세계 항공업계는 환불 대란에 휩싸였다. 대형 항공사도 유동성 위기에 빠져 환불 업무를 미뤘다. 사실상 ‘환불 거부’나 다름없는 입장을 취한 항공사도 있다. 아에로멕시코와 타이항공이 대표적인 경우다. 각각 멕시코와 태국을 대표하는 대형 항공사라는데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경영 위기 상황에서 소비자 환불은 뒷순위였을 테다.

파산 보호 항공사만 환불을 외면한 건 아니다. 체코항공, 아에로플로트 러시아항공 등 외국 항공사 대부분이 신속한 환불 조처를 하지 않았다. 국내 항공사 사례도 있다. 지난 3월 운항을 중단한 이스타항공이다. 인터파크투어 관계자는 “환불 지연 사례가 100건이 넘는 항공사가 수두룩하다. 1000건이 넘는 항공사도 있다”며 “항공사가 정책을 수시로 바꾸고 환불 접수 시스템도 불안정해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

환불 복불복?  

모든 소비자가 항공권 환불을 못 받은 건 아니다. 항공권 예약 경로에 따라 받은 사람도 있고 못 받은 사람도 있다. 많은 항공사가 자사 웹사이트에서 예약한 소비자에게는 비교적 빨리 환불해줬지만, 여행사를 통해 구매한 항공권은 환불을 미루고 있다.

멕시코 국영 항공사인 에어로멕시코가 7월 1일 미국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멕시코 국영 항공사인 에어로멕시코가 7월 1일 미국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에어로멕시코항공의 항공권을 산 소비자 150명이 한국소비자원에 하나투어와의 집단 분쟁 조정을 신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소비자는 판매 대행사인 여행사가 환불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고, 하나투어는 항공사가 환불 시스템을 막아서 책임이 없다고 반박한다. 이 와중에 에어로멕시코 서울 예약센터 전화는 계속 먹통이다. 조정 결과는 내년 초 나올 전망이다.

여행사와 항공사 대부분이 단축 근무를 들어간 것도 문제다. 하나투어나 인터파크투어 같은 대형 여행사와 전화 상담이 가능한 항공사는 소비자 항의라도 접수한다. 여행사가 휴·폐업을 했거나 잠적한 경우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항공사 관계자는 “외국 항공사도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며 휴직 중인 직원이 무척 많다”며 “내년에는 인력을 감축하는 항공사도 많을 것”이라 전망했다.

환불 끝내 못 받나?  

집단 분쟁 조정 사례 중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은 일부 소비자를 구제했다. 항공사가 소비자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여 7월 31일까지 접수한 소비자에게는 환불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영업을 안 하는 항공사와 여행사가 많아 조정 작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항공 정산 사이트에 올라온 체코항공의 공지문. [사진 토파스 홈페이지 캡처]

항공 정산 사이트에 올라온 체코항공의 공지문. [사진 토파스 홈페이지 캡처]

국토교통부가 환불 갑질을 일삼는 외국 항공사에 대해 강도 높은 조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 항공사가 예약금을 볼모 삼고 여행사와 소비자의 분쟁을 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국제항공과 관계자는 “항공사가 한국 소비자를 차별했다면 강력히 시정 권고를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며 “항공사가 약관을 어긴 경우는 공정위와 함께 대응한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강제적인 수단을 쓸 수도 없다”고 말했다.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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