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곡하와이가 망한 거지, 부곡이 망한 건 아닙니다.”
비대면 여행지로 뜬 부곡온천 #수온 78도…가족탕 갖춘 곳 많아 #아이들 취향으로 꾸민 키즈룸도 #호텔 안 묵고 온천만 이용해도 돼
경남 창녕군 부곡면에서 만난 주민이 하나같이 한 말이다. 솔직히 부곡 사람 입장에선 억울할 법하다. 3년 전 국내 최초 워터파크라는 ‘부곡하와이’가 문을 닫았지만, 부곡의 온천 시설 24개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 목욕탕이 직격탄을 맞았어도 부곡은 피해가 덜한 편이다. 모르는 사람과 섞이지 않고 가족끼리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가족탕’이 부곡에 유난히 많아서다. 1980~90년대 누구나 한 번쯤 가본 추억의 여행지 부곡이 ‘비대면 온천 여행지’로 되살아났다.
객실 난방도 온천수로
‘지하로부터 솟아나는 섭씨 25도 이상의 온수.’
온천법 제2조에 나온 온천의 정의다. 25도는 퍽 차가운 물이다. 그런데도 온천으로 인정해준다. 전국 598개 온천 이용 시설 가운데 상당수가 25도 수준의 찬물을 데워서 쓴다. 부곡은 다르다. 온천수 온도가 78도에 이른다. 활화산 지대도 아닌데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물이 지하 380m 아래에 가득 차 있다.
11월 25일 부곡을 찾았다. 온천중앙로 좌우에 줄지어 선 온천 숙소 옥상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알고 보니, 온천물이 너무 뜨거워 옥상 냉각장치에서 식힌 뒤 내려보내는 거란다. 부곡은 온천수 용출량이 하루 6000t 정도로 넉넉해 온천 호텔 객실 난방도 온천수를 쓴다. 야외 족욕 체험장 두 곳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운영을 중단한 상태였다. 창녕군이 지은 ‘부곡온천 르네상스관’도 문을 닫았다. 그러나 삼삼오오 온천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부곡면 온천 시설 24개 중 목욕탕만 운영하는 곳은 없다. 모텔, 호텔 같은 숙소를 겸한다. 숙소 80% 정도가 가족탕을 갖췄다. 숙소 객실에 2명 이상 들어갈 만한 큰 탕을 갖췄다는 뜻이다. 가족탕은 하룻밤 묵어도 되지만 2~3시간 ‘대실’ 방식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에도 부곡은 가족탕 덕분에 불황을 피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98개 객실을 갖춘 로얄관광호텔은 일요일인 지난달 22일 210개 팀이 대실 형태로 가족탕을 이용했다. 로얄관광호텔 나동기 총지배인은 “올해 들어 대중탕 대신 가족탕을 이용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며 “아이가 놀기 좋은 키즈룸 10개의 경우 주말에 이용하려면 두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객실 두 개 터 가족탕으로
부곡에서 온천 개발이 본격화한 건 1972년이다. 고(故) 신현택씨가 눈이 내리면 바로 녹는 샘물을 발견하면서다. 목욕탕과 여관이 하나둘 생겼고, 79년 부곡하와이가 개장하면서 90년대 중반까지 부곡은 전성기를 누렸다. 2017년 부곡하와이가 폐업했지만, 방문객이 뚝 끊긴 건 아니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부곡 온천 이용객은 282만 명으로, 대전 유성(471만 명), 충남 아산 온양(383만 명)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부곡 온천 시설이 애초부터 가족탕을 갖췄던 건 아니다. 부곡온천관광협의회 남영섭 회장은 “30~40대 가족을 겨냥해 객실 두 개를 터서 큰 가족탕을 만드는 게 5년 전부터 유행했다”고 설명했다.
가족탕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욕조보다 조금 큰 탕을 갖춘 낡은 숙소가 있는가 하면, 커플용 월풀을 갖춘 곳도 있다. 한성호텔이나 레인보우호텔처럼 테라스에 큼직한 탕을 설치해 노천욕을 만끽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요즘 대세는 아이를 겨냥한 ‘키즈 룸’ 콘셉트다. 방 한쪽에 놀이기구를 설치하거나 어린이 취향으로 실내를 꾸민다. 키즈스테이호텔이 대표적이다. 이 호텔은 온천 비수기인 8월에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여름 휴가철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가족이 온천 호텔로 몰렸다. 뜻밖의 ‘코로나 수혜’라 할 만하다.
경남 창원에서 두 아이와 함께 부곡을 찾은 서지현(36)씨는 “가족여행으로 거제, 여수에 있는 풀빌라 펜션을 많이 다녔는데 부곡에 이런 시설이 있는지 몰랐다”며 “아이를 씻겨보니 물이 좋다는 걸 알겠더라. 피부가 매끈해졌다”고 말했다.
80년 묵은 여관부터 대형 리조트까지…가족탕 갖춘 전국 온천
전국 598개 온천 이용 업소 중 몇 곳이 가족탕을 갖췄는지 알려지진 않았다. 한국온천협회도 모르고, 개별 자치단체도 모른다. 통계로 파악되지는 않지만, 울진·아산·속초처럼 익히 알려진 전통 온천 여행지마다 가족탕을 갖춘 숙소가 몇 개씩 있는 건 확인된다.
부산에 오래된 가족탕이 많다. 해운대구와 동래구에 각각 다섯 곳 정도의 온천 업소가 가족탕을 갖췄다.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해운대 청풍장여관도 가족탕을 갖췄다. 충북 충주 수안보면에도 가족탕을 갖춘 숙소가 여럿 있다. 수호텔, 패밀리스파텔, 리몬스호텔이 대표적이다. 강신조 수안보온천관광협의회 사무국장은 “옛날엔 주변 관광지를 들렀다가 온천을 찾는 단체가 많았다면 요즘은 자가용 몰고 오는 가족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온천 여행지로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도 가족탕으로 주목받는 숙소가 있다. 이를테면 경북 영주 ‘영주호텔’은 지하 1000m에서 끌어올린 온천수를 쓴다. 전남 담양 ‘담양리조트’는 3시간 즐기는 가족온천 6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박상우 담양리조트 홍보실장은 “주말에 가족온천을 이용하려면 3~4주 전 예약해야 한다”며 “먹거리까지 챙겨와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창녕=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