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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0명 울리는 수능 4교시의 저주…국민청원까지 등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년을 수능에 매달렸는데 한순간에….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 지난 3일 오전 대전교육청 제27지구 제13시험장이 마련된 괴정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 없음. 뉴스1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 지난 3일 오전 대전교육청 제27지구 제13시험장이 마련된 괴정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 없음. 뉴스1

 지난 3일 강원도 한 시험장에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르던 수험생 A군은 4교시 한국사 문제지를 제출한 뒤 탐구영역 문제를 풀려다 깜짝 놀랐다. 사회탐구 과목 중 하나인 한국지리 문제지 아래 다른 과목 문제지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강원지역 수험생 4교시서 9명 무효처리 #4교시 운영방식 복잡 5년 간 522명 위반

 A군은 즉시 감독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부정행위로 간주돼 시험을 마치고 인정 조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번 수능에서 A군처럼 4교시 탐구영역에 선택과목이 아닌 문제지를 확인해 부정행위로 간주된 강원지역 수험생은 총 9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수능 전체가 무효처리돼 ‘0’점을 받게 된다.

 복잡한 수능 4교시 운영 때문에 A군처럼 수능 전체가 무효처리 되는 사례는 매년 반복돼왔다. 국회 교육위 소속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2020학년도 수능시험 부정행위 적발 건수 1173건 중 44.5%에 달하는 522명이 ‘4교시 응시방법 위반’인 것으로 집계됐다.

수능 4교시 얼마나 복잡하길래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 고사장에 시험 중 유의사항이 게시돼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 없음. 사진공동취재단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 고사장에 시험 중 유의사항이 게시돼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 없음. 사진공동취재단

 그렇다면 수능 4교시 운영 방식이 어떻길래 연평균 100명이 넘는 부정행위자가 나오는 걸까. 4교시 운영 방식은 이렇다. 수능 4교시는 한국사 및 탐구과목(사회탐구·과학탐구·직업탐구)의 시험이 이루어진다. 4교시 시험은 102분으로 수험생은 먼저 한국사 시험지를 배부받아 30분 동안 푼다. 이어 10분 동안 한국사 문제지 회수 및 탐구과목 문제지 배부가 진행된다.

 이때 각 수험생은 최대 2개의 탐구과목(제1선택, 제2선택)을 선택한다. 30분 동안 제1선택 과목의 시험이 이뤄지는데 수험생들은 제2선택 과목의 문제지를 꺼내 바닥 또는 책상 속에 놓아야 한다. 제1선택 과목의 시험이 끝나면 2분 동안 제2선택 과목으로 문제지를 교체한 후 같은 방식으로 30분간 시험을 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수험생은 자신의 탐구과목 응시 순서에 맞게 30분당 한 과목만 풀어야 한다. 한 과목을 푸는 동안 책상 위에 다른 선택 과목이 올려져 있으면 안 된다. 이 경우 부정행위로 간주해 0점 처리된다. A군의 경우 문제지가 겹치면서 책상에 두 과목의 문제지가 올려지는 바람에 부정행위로 처리됐다.

 자신이 선택한 순서에 따라 2개의 탐구과목 시험을 보는데 순서를 착각해 잘못 응시하게 될 경우도 부정행위가 된다. 또 4교시 한국사 및 탐구영역의 답안지는 한장의 답안지에 세 과목의 OMR 마킹이 모두 이뤄지기 때문에 각 과목 30분의 시험시간에 다른 과목을 수정하는 경우도 부정행위로 처리된다.

“수험생 실수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 지난 3일 오전 대전교육청 제27지구 제13시험장이 마련된 괴정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 없음. 뉴스1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 지난 3일 오전 대전교육청 제27지구 제13시험장이 마련된 괴정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 없음. 뉴스1

 춘천지역 수능 감독관으로 들어갔던 한 교사는 “시험 전 안내가 나가기 때문에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은 학생의 잘못도 있지만, 현장에서 보면 이야기를 듣고도 헷갈리는 수험생이 있다”며 “해마다 반복되는 문제인 만큼 수험생이 실수할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의도하지 않은 ‘4교시 부정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답안지 내 한국사, 제1선택, 제2선택 과목 작성 부분의 색깔을 다르게 인쇄했다. 감독관들도 매년 4교시에 응시방법 위반이 많이 발생한 만큼 수험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해 왔다.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수험생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안내를 하고 있지만 긴장한 학생들이 실수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매년 이어지고 있다”며 “실수라도 구제할 방법이 없어 위반한 학생과 이를 적발한 교사가 모두 한동안 굉장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시험 방식을 손보면 발생하지 않을 문제이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11월엔 이 같은 문제가 매년 반복하자 ‘수능 4교시 운영방식을 개선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문제 발생이 고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단순 착오, 실수에 의한 것이라는 점, 단순 실수 등으로 응시자의 오랜 노력이 수포가 된다는 점, 문제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복잡한 방식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볼 때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모든 문제가 수능 4교시 운영방식의 복잡함에서 발생하는 것인 만큼 현행 운영방식을 지속해서 고수하는 것은 국민의 시선으로 볼 때 행정편의주의의 일종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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