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방요법에 국악 접목시켜

중앙일보

입력

'국악을 들은(?) 누에가 훨씬 잘 자란다? '

일반적인 상식으로 믿어지지 않겠지만 실험이 밝힌 엄연한 사실이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동덕여대 음악과 강사인 이승현(38.사진)씨.

올해 그는 '오행(五行)으로 분류한 음악이 누에의 형질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란 박사학위 논문을 냈다. 이를 통해 한방치료에 국악을 접목하려는 국내 첫 시도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그의 색다른 접근은 1990년 음대 졸업 후 엉뚱하게도 한의대 대학원 조교를 하면서 시작됐다. 옛 한의서인 황제내경에서 각치궁상우라는 오음(五音)을 발견하고 궁금증을 가졌던 것.

하지만 한방의 음악치료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갖게 된 것은 98년 음악치료학회에 참석한 뒤부터.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보는 한방철학이 음악치료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음악의 치료 대상은 정서적인 질병의 범주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이를 형(形).기(氣).신(神)이라는 통합적 치료철학을 가지고 있는 한방에 응용하면 육체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수단으로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지요."

그는 경희대 한의대 원전(原典)교실을 찾아가 연구 조교를 자청했고, 이로부터 4년여 한의대생들과 학부 수업을 듣고 원전을 뒤지며 새로운 학문을 체계화했다.

우선 전통음악을 한의학의 원리인 음양과 오행으로 분류했다. 가락.장단.음색을 목화토금수 오행에 따라 나눠 대상에 따라 들려주자는 것이다.

예컨대 봄 기운의 발동을 보여주는 목(木)의 음악의 경우 자진모리나 휘모리장단 같은 빠른 가락과 밝은 음색의 곡을, 곡식을 거둬 저장하는 겨울의 기운을 보여주는 수(水)의 음악은 진양조장단 같이 느리고 무거운 음색의 곡을 선별하는 식이다.

누에를 실험대상으로 삼은 것은 객관적인 검증이 쉽기 때문. 온도.습도.먹이 등 동일한 조건에서 서로 다른 음악을 들려준 뒤 개체별 생장 및 형질 변화를 구분한 것이다.

결과는 분명했다. 목의 음악에 노출된 누에 알은 상대적으로 이른 시간 안에 부화됐고, 토의 음악을 들은 누에군은 가장 무거운 체중을, 수의 음악을 들은 누에군에선 고치 무게가 가장 무거웠다.

李박사의 다음 작업은 국악을 환자치료에 응용하는 것. 그는 "간(肝).심(心).비(脾).폐(肺).신(腎)과 연결된 오행의 기운과 균형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한방 음악치료의 목적"이라며 "음악치료를 약.침.구(灸)와 같은 한방의 치료법으로 자리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