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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인사이트] 시간과의 싸움 나선 시진핑의 ‘아픈 손가락’ 반도체·우한

중앙글로벌머니

입력

코로나 발견 338일 우한은 지금

지난 3월 31일 우한시의 볜단산(扁担山) 공동묘지 인근에서 한 시민이 가족의 영정을 들고 서있다. AFP 통신이 선정한 2020년 올해의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지난 3월 31일 우한시의 볜단산(扁担山) 공동묘지 인근에서 한 시민이 가족의 영정을 들고 서있다. AFP 통신이 선정한 2020년 올해의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27건의 원인불명의 폐렴이 발견됐다. 사람 간 전염은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31일 우한(武漢)시 당국의 첫 발표이후 오늘로 338일이 지났다. 우한은 지금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여념이 없다. 많은 부분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시진핑, 무역전쟁 터지자 우한행 #“반도체는 심장…봉우리 오르자” #코로나19 뚫고 반도체 굴기 박차 #차 보조금 앞세워 내수 불지피기 #‘쌍순환’ 지원 업고 387조원 투자

코로나19에 이어 대홍수 위기감이 고조되던 지난 6월 20일. 우한에서 국가 메모리반도체 2기 착공식이 열렸다. 후베이(湖北)성 서열 1위 잉융(應勇·63) 당서기를 비롯해 고위 지도부가 대거 참석했다. 2년 전 미·중 무역 전쟁이 막 불붙던 2018년 4월 26일. 시진핑(習近平·67) 주석이 중국 토종 최대 메모리 기업 창장메모리(長江存儲·YMTC)의 자회사 우한신신(武漢新芯·XMC)을 방문했다. 시 주석은 “반도체는 심장과 같다. 심장이 강하지 않으면 몸집이 아무리 커도 강하다 할 수 없다”며 “반도체 기술에서 중대 돌파를 가속해 세계 반도체 메모리 기술의 높은 봉우리에 오르자”면서 ‘반도체 심장론’을 설파했다. 과거에도 자력갱생해 양탄일성(兩彈一星, 수소·핵폭탄·인공위성)을 만들었다며 핵심 기술은 반드시 자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한은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이다. 2016년 반도체 불모지 중국에 최대 낸드메모리 회사인 창장메모리 공장이 들어섰다. 미국이 꺼리는 ‘중국제조 2025’의 골자는 반도체 국산화다. 전 세계 반도체 소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5%. 세계 최대 시장이다. 자급률은 15%다. 지난해에만 반도체 수입액은 3000억 달러(약 332조원), 적자는 2000억 달러(221조원)다. 202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40%라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지만, 달성은 아직도 요원하다. 반도체가 시진핑의 ‘아픈 손가락’ 인 이유다.

우한을 국가 메모리 기지로 꼽은 데에는 대표 산업인 광(光)산업과 각종 R&D 센터가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한은 128개 대학에 130만 명의 대학생을 보유한 인재의 산실이다. 국가 실험실을 포함한 R&D 센터가 2300여 개가 넘는다. 신산업 육성의 최적지다. 최근 몇 년 우한은 디스플레이·반도체를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디스플레이는 전 세계 패널 공급량의 20%를 차지한다. 100년 만의 대변혁기라는 올 1월 반도체 굴기의 무대 우한이 초대형 암초인 코로나를 만났다.

우한, 불길 속에서 부활한 도시

“이번 고난을 겪은 후베이·우한은 욕화중생(浴火重生)하고 신시대의 휘황찬란한 업적을 창조할 것이다.” 시 주석이 지난 5월 24일 양회(중국의 정기 국회격)에 참석한 후베이 대표단에 한 말이다.

“봉황열반 욕화중생(鳳凰涅槃 浴化重生)”은 봉황이 자신을 불사르고 재 속에서 부활한다는 뜻이다. 도시 봉쇄라는 극단적인 희생을 감수하고 국가를 살렸다는 우한에 올해 들어 수식어가 생겼다. ‘영웅의 도시’, ‘욕화중생’이다. 우한은 불사조처럼 새로운 부활을 꿈꾸고 있다.

중국과 우한 경제통계

중국과 우한 경제통계

지난 5월 19일 확진자 ‘0’을 찍은 후 통계상 우한에서 국내 확진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있어도 해외 유입이다. 6월 13일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후베이성의 방역 등급이 3급으로 하향되면서 대부분 정상화됐다. 실제 통계를 보면 코로나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 단번에 알 수 있다. 1월 23일부터 76일간 도시 봉쇄로 상반기 경제는 초토화됐다. 1분기 GDP는 40.5% 급감했다. 2분기는 마이너스 20%, 3분기 마이너스 10%를 기록했다. 통계 집계 후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경기 하강은 한순간이지만, 회복은 더디다. 특히 소비가 어렵다. 기대됐던 ‘보복성 소비’도 우한은 예외 상황이다. 생필품 위주의 소비만 늘 뿐 일반 소비는 여전히 얼어붙었다. 우한 시민은 도시 봉쇄와 코로나의 진앙이라는 트라우마에 휩싸여 여전히 전시(戰時)에 준하는 소비 형태를 보인다. 자동차 구매보조금이 완만하게 소비를 끌어올릴 뿐이다. ‘중국의 디트로이트’로 불리는 우한은 정부 보조금으로 차 구매를 독려하고 있다. 연말까지 우한에서 생산된 자동차를 구매하면 최대 1만5000위안(252만원)을 받을 수 있다. 올해 10월 후베이 자동차 생산량 증가율은 26.5%. 전국 평균(11.1%) 보다 빠르게 회복 중이다. 우한 전체 경제 재건에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번화가 상점은 이제 막 신장개업했거나, 폐업 상태다. 여전히 곳곳이 빈 매장이다. 정부 지원 분야와 국유기업을 제외한 민간기업·자영업자는 혹독한 겨울을 견뎌야 한다.

“철강 50년 걸려 … 반도체 30년 필요”

미·중 무역전쟁이 불붙기 시작하던 2018년 4월 26일, 시진핑(習近平·67) 중국 국가주석이 반도체 공장 우한신신(武漢新芯·XMC)을 방문해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CC-TV 캡처]

미·중 무역전쟁이 불붙기 시작하던 2018년 4월 26일, 시진핑(習近平·67) 중국 국가주석이 반도체 공장 우한신신(武漢新芯·XMC)을 방문해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CC-TV 캡처]

험난한 현실에도 우한시 정부가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각별한 지원책이다. 9월부터 각종 국내 대형 행사가 우한을 가득 메우고 있다. 다국적 기업, 민영기업, 국영 기업 주최의 포럼과 투자 협력 조인식이 일주일이 멀다하고 우한을 찾고 있다. 후베이와 우한시는 4분기 GDP 성장률을 플러스로 바꾸기 위해 전사의 결연함으로 무장했다. 후베이성은 하반기에 신사회간접자본(SOC)·민생·의료 등 10대 중점 프로젝트에 3년간 2조3000억 위안(387조원) 투자전략을 발표했다. 지난해 후베이성 GDP 절반 규모의 투자다. 10월 말 우한시 발개위에서 발표한 중대 프로젝트 계획에도 굵직한 반도체 산업 프로젝트가 들어있다. 국가 메모리 기지 프로젝트 815억 위안, 우한신신 12인치 반도체 2기 공정 135.7억 위안 등등. 단 관(官) 주도의 산업 육성책과 높은 국유 기업 의존도는 양날의 칼이다. 그럼에도 우한 부흥, 반도체 굴기의 중국몽의 기세는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다.

과거 중국 디스플레이 제조사 BOE(京東方)는 2002년 한국 LCD 업체 하이디스를 인수해 기술을 확보하고 기반을 구축하는 데 10여 년이 걸렸다. 정부의 막강한 정책·자금 지원을 등에 업고 2012년 흑자로 전환됐다. 내년에는 한국을 앞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도 LCD와 마찬가지로 시간과의 싸움일 수 있다.

“반도체는 공업화 시대의 철강과 마찬가지다. 중국이 50년 들여 철강 제조 기술을 확보해 비약적인 공업화를 이뤄냈다면, 반도체는 30년 이상의 장기 전략으로 움직여야 한다.” 예톈춘(葉甜春) 중국과학기술원 마이크로전자연구소장의 조언이다. 중국은 시간과의 싸움을 자신한다. 첨단 산업과 반도체 굴기와 함께 불사조처럼 환골탈태하려는 우한의 미래가 자못 궁금해진다.

내수 강조 ‘쌍순환’ 전략에 중국의 배꼽 우한이 들썩인다

중국이 국내 대순환을 중심으로 하는 ‘쌍순환’ 전략을 내놨다. 14차 5개년 규획(2021~2025)의 핵심 이념이자 미국 제재에 대응하는 카드다. 한마디로 소비와 신도시화를 통한 자급자족형 내수경제 활성화 주장이다. 쌍순환 전략에 중국 내륙 도시가 들썩인다. 우한이 대표적이다.

우한은 개혁 개방 전까지 중국 제조업의 핵심 지역이었다. 중국 최초의 제철소 우한 철강을 비롯해 조선·자동차·항공 산업 등 중공업 기지였다. 개혁개방 이후 국유기업의 비효율성·배타성으로 낙오가 시작됐다. 상하이·베이징·광저우 등 연해 지역이 중국 대표 도시로 발전하는 동안 우한은 시간이 멈춰 버렸다. 국내 대순환과 함께 시진핑 주석이 중시하는 지역균형발전, 선부론(先富論) 대신 ‘공동부유(共同富裕)’에 힘이 실리면서 중국 내륙 도시가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중부 지역에서 인구 1000만명, GDP 1조 위안을 초과하는 유일한 도시가 우한이다. 강과 바다가 연결된 황금 수로, 중국의 배꼽 격인 중앙에 위치한 교통 물류의 요충지, 혁신 성장과 소비 중심 도시로 우한이 거듭나고 있다. “개혁개방 40년이 연해 지역 발전을 이끌었다면, 다가올 새로운 40년은 내륙 지역에 역사적 기회가 될 것이다.” 자오하이산(趙海山) 후베이성 부성장이 내놓은 자신에 찬 전망이다.

20세기 초 우한의 대외 무역액은 상하이 다음으로 전국 2위를 차지해 ‘동방의 시카고’로 이름을 날렸다. 국내 대순환의 대동맥인 창장 중류 대표 도시, 우한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중부 지역에 우한 도시 클러스터를 세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김윤희

중국 푸단대 박사. KOTRA 중국팀, 상하이무역관, 베이징무역관을 거치며 중국과 다국적 기업의 전략과 현장을 관찰하고 있다. 『상하이, 놀라운 번영을 이끄는 중국의 심장』, 『중국 CEO, 세계를 경영하다(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김윤희 KOTRA 우한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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